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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성가대는 새해 첫 주일에 연례행사처럼 한복을 입는다. 작년 첫 주일 아침은 비가 쏟아졌는데도 여자 대원들 대부분이 한복을 갖춰 입고 왔다.

새색시 적에 입던 색동부터 산뜻한 개량 한복까지 색상과 질감이 참으로 다양하고 화려하다.

손수 뜨개질한 한 권사님의 차랑차랑한 연분홍 한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새댁한복 마님 한복 어우동 한복 장희빈 한복 등등… 디자인에 어울림직한 이름을 붙여 부르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한복만큼이나 화사하다.

한복을 입으면 괜스레 어깨가 출렁거리고 찬양의 가락이 더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한복 입는 날은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속바지와 속치마 속저고리를 다 갖춰 입어야 하는지 치마의 겉자락이 어느 쪽에 오는지 옷고름은 어떻게 매는지 또 헤맨다. 한 짐이 된 몸을 추슬러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마저 잡은 후 버선과 고무신을 꺼낸다. 하지만 매번 편안한 양말과 구두를 택하고 만다.

최대한 간편하게 입고 신는다 해도 한복은 평상복보다 몸의 움직임이 둔하고 조심스럽다. 아무튼 늘 그랬던 것처럼 작년에도 예배가 끝난 후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한복을 입고 찍은 단체 사진을 대하면 그 느낌이 각별하다. 그 해 첫날은 이 사람들과 시작했구나 오래된 사진일수록 느낌이 더 짙다.

자녀 결혼식때 부모들이 입는 한복 또한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요즘 결혼식장을 다녀보면 남자 혼주가 한복을 입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옷의 실용성을 따져 혹은 타인종과 결혼하는 자녀의 입장을 고려해서 니트나 양장 드레스를 입는 분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머니들은 한복을 결혼 예복으로 준비한다. 색채로 개성과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는 한복은 단색인 웨딩양복 혹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랑 신부를 돋보이게도 한다.

얼마 전에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가 결혼식장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가 결혼했던 그날 이후 가장 예쁜 모습이다. 메이크업 전문가의 도움도 있지만 토실토실한 몸매를 품위와 우아함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준 한복 덕을 톡톡히 본 게 분명하다.

자식의 결혼사진 특히 가족사진은 한 가정의 가족사를 보여준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기쁜 일 중에 가장 큰 것이 자녀의 결혼일 것이다. 자식으로 인해 다른 한 가족과 깊은 인연을 맺는 날이다.

이런 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자신들의 전통복장을 입은 어른의 모습을 보면 경외심이 느껴진다. 상대편 집안의 전통복장을 존중해주는 모습도 아름답다.

타인종과 결혼하는 자녀의 양가 부모 모두 한복을 갖춰 입은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한복이 어색하고 편치않아 절절매면서도 흥겨워하는 타인종 부모님 모습에 결혼식이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머지않아 다시 한해의 시작이다. 새해도 변함없이 첫 주일에는 모두 한복을 차려입고 사진을 찍을 것이다. 하하 호호 웃음 소리도 함께 찍힐 것이다. 오래된 사진을 펼쳐 보는 일은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과 같다. 고운 한복을 입고 찍은 특별한 날의 사진은 떠난 사람도 곱고 새로운 얼굴도 곱다. 세월의 강물이 한참 흐른 후에 지금을 돌아보면 한복보다 더 고운 색으로 채색되어 있을 것이다.

미주 중앙일보 201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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