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2
어제:
13
전체:
1,293,437

이달의 작가
조회 수 55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오랜만에 페이스북을 둘러보던 중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국의 조카 방을 클릭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랑이 만들었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지난 크리스마스 만찬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상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미국 사는 나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서양 요리들이다. 사진 아래에는 '고마워요…남편' 이라는 조카의 멘트과 함께 빨간 하트가 빛나고 있었다. 행복에 겨운 조카의 얼굴을 떠올리니 빙긋이 웃음이 났다.

이번에는 미국 사는 친구 아들 방을 찾아갔더니 더 멋진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동안 사귀어 오던 여자 친구에게 청혼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바닷가를 배경으로 찍은 프로포즈 장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친구 아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하는 자세고 여자 친구는 '어쩌면 좋아'라는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는데 두 사람의 설레는 가슴이 온 바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같았다. 신세대들의 사랑과 결혼이 모두 저렇게 달콤하고 로맨틱한지는 모르지만 세월은 분명히 달라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자녀들을 보면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을 바라볼 때처럼 신비롭다. 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고 말은 간단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연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아픔이 있었건 공부하느라 혹은 경력을 쌓느라 연애할 틈이 없었건 독신주의자가 아니라면 포기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 중에 오직 그 한 사람을 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생 사랑하며 살기로 만인 앞에서 약조하는 결혼식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도 그 기적을 목격하는 날이 많아질 것 같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만 초대하는 단출한 결혼식이든 아는 분 모두를 초대해서 치르는 열린 결혼식이든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랑 신부의 모습은 언제나 황홀하다. 저 순간을 맞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서로에게 완전한 신뢰를 심는 일도 양가 집안의 흡족한 기쁨이 되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으리라.

결국, 사랑을 선택한 신랑 신부를 축하하러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사뿐사뿐 입장하는 신부를 보면 왠지 코가 시큰하고 신부를 맞는 신랑의 가슴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하객들 앞에서 나누는 신랑 신부의 키스 장면에 이르면 힘찬 박수와 함께 진심어린 축하의 환호가 터져나온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가 자신의 부모와 또 상대 부모와 포옹하는 모습에서는 만감이 교차할 것 같은 그들의 심정이 느껴져 목이 메일 때가 있다.

아내를 위해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한 조카의 남편, 무릎 꿇고 청혼하는 친구 아들, 사람들을 초청해서 치르는 결혼식, 이 모든 이벤트가 일상의 삶을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여기저기 숨어있는 일상의 복병들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젊은 세대들의 사랑의 이벤트가 남의 일이 아닌 세월이 온 모양이다.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고도 한없는 기쁨을 누리는 부모라는 자리, 세월이 안겨준 귀한 선물이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3.2.12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9 수필 냉장고 정리와 마음 청소 오연희 2015.12.11 355
68 수필 새해 달력에 채워 넣을 말·말·말 오연희 2015.12.29 173
67 수필 굿바이, 하이힐! file 오연희 2016.01.14 129
66 수필 가뭄 끝나자 이제는 폭우 걱정 1 오연희 2016.01.29 165
65 수필 우리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까 오연희 2016.02.13 181
64 수필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낙서' 오연희 2016.03.12 247
63 수필 인터넷 건강정보 믿어야 하나 2 오연희 2016.03.29 194
62 수필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들 2 오연희 2016.05.10 137
61 엄마의 자개장 4 오연희 2016.05.10 162
60 수필 나에게 온전히 몰두하는 아름다움 2 오연희 2016.05.19 156
59 수필 은행 합병과 자녀들의 결혼 2 file 오연희 2016.05.28 175
58 수필 보물단지와 애물단지 5 오연희 2016.06.20 145
57 수필 신문에서 만나는 연예인과 스포츠인 2 file 오연희 2016.07.01 127
56 수필 목소리는 인격, 무얼 담을까 2 오연희 2016.08.01 156
55 폐가(廢家) 4 file 오연희 2016.08.08 207
54 수필 렌트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4 오연희 2016.08.25 103
53 잔치국수 4 오연희 2016.08.29 224
52 수필 야박해진 국내선 비행기 인심 6 오연희 2016.09.14 329
51 수필 부고에서 읽는 세상살이 4 오연희 2016.10.19 404
50 수필 남가주에서 꿈꾸는 '가을비 우산 속' 2 오연희 2016.11.09 648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