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1
어제:
67
전체:
1,292,761

이달의 작가
조회 수 37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한국에 와 있다. 연로하신 친정엄마께 맛난 것도 만들어 드리고 시장도 함께 다니고 무엇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리라… 나름 작심을 하고 왔다. 그런데 첫날부터 삐거덕거린다. 반찬이라도 한두 가지 만들까 싶어 장을 봐 오고 냉장고라도 열라치면 '네가 뭘 알겠냐?'며 당신이 나선다. '이게 아닌데…' 싶어 항변해도 들은둥만둥이다. 잠시 다니러 온 딸은 그저 반갑고 귀한 손님일 뿐이다.

비척비척 걸음이 흔들리는 엄마와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는 것도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집을 나서면 당신이 알고 있는 노선을 소상히 그리고 누누이 일러준다. '엄마, 나 한국 사람이거든'해도 소용이 없다. 돌아올 때까지 온통 딸 걱정 뿐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사우나탕에 갔다. 주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린다. 자식 이야기, 먹는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그리고 남편 바람피운 이야기까지 여자들의 수다는 바톤터치로 이어져 끝이 없는 것 같다.

주제가 다양하지만, 시어머니 혹은 친정어머니와 얽힌 애틋한 사연들이 귀에 크게 들어온다.

'이 자식 저 자식 집에 옮겨 다니는 천덕꾸러기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40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셨다는 한 여인의 고백에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자신은 부모를 모셨지만, 자신의 노후는 자식들에게 의탁할 수 없는 요즘 세태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그녀, 왠지 슬프고 왠지 아름답다.

여인들의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며 부모님을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여차하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자식들은 그나마 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찾아뵙지 못한 탓인지 나이 듦의 변화가 더 급격하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엄마, 왜 그래?'가 툭 튀어나오고 만다. 민망함과 섭섭함이 깃든 엄마의 표정에 코가 시큰해진다. 엄마 곁에서의 이 짧은 나날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임을 생각한다. 미국 돌아가면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가겠지만, 문득문득 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다.

미주 중앙일보 2013.11.22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9 수필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오연희 2015.07.06 291
408 "나는 기쁘다" 오연희 2003.06.22 1081
407 수필 "내가 뭐랬냐?" 오연희 2003.06.29 906
406 "이것또한 지나가리라" 에 대하여 1 오연희 2008.03.03 1463
405 수필 "정말 충분했어" 오연희 2003.07.12 832
404 수필 '드롭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 오연희 2015.07.06 174
403 수필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오연희 2018.09.26 181
402 시작노트 '어머니' 그 무게감 1 오연희 2006.05.04 1125
401 수필 '우두커니'를 거부하는 사람들 4 오연희 2017.11.30 182
400 수필 '우리'의 정서 오연희 2007.08.07 1694
399 수필 '조심조심, 미리미리' 오연희 2017.08.02 142
398 수필 '카톡 뒷북녀'의 카톡 유감 4 오연희 2017.03.14 231
397 -도종환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를 읽고- 오연희 2006.08.09 908
396 2023 한국일보창간 축시 file 오연희 2023.07.17 72
395 5월의 이별 오연희 2006.06.14 788
394 8월 오연희 2012.08.12 780
393 수필 94세 시어머니 1 오연희 2006.05.09 1308
392 Help Me 1 오연희 2006.07.13 748
391 K시인 이야기 오연희 2005.01.19 701
390 YMCA 1 오연희 2007.08.03 132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