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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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가까워져 오는 시간, 문학모임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110번 프리웨이가 또 막혔다.

이 밤중에 이 길을 막아 놓으면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방향감각이 유난히 둔한 나에게는 집까지 가는 길이 '막막강산'처럼 아득하다.

몇 해 전에도 그랬다. 10번을 타자마자 110번을 갈아타야 하는데 공사 중이라며 진입로를 차단해 놓았다. 그날도 행사가 길어지고 뒷모임까지 갖느라 밤 11시가 다 된데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온몸이 긴장감으로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다. 진입로 차단 표지판을 원망스레 바라보며 내 집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10번 길을 그냥 쭉 내 달려야 했다.

어딘가 차를 세워 먼저 집에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 다음 출구로 나가 주유소를 찾아 들어갔다. 투둑투둑 차를 두드려대는 빗소리뿐,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적막하기 짝이 없는 밤이었다. 천천히 주차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양쪽 구석에서 시커먼 물체가 나타나더니 내 차 쪽으로 근접해 오는 것이었다.

사람이 반갑기는커녕 무서웠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위협감이 느껴져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하다.

이리저리 한참을 돌아 110번 프리웨이의 다른 진입로를 찾기도 하고, 결국 못 찾아 시간이 배나 걸리는 로컬 길을 타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110번 프리웨이 차단으로 인해 밤길을 헤맨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때도 차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있었지만 늦은 밤길에 낯선 지역을 들어서면, 머릿속이 하얘져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허둥댄다. 그런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는지, 정말 속상하다.

뇌의 구조상 '여자는 대부분 남자보다 길눈이 어둡다'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앞길이 막혀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갈 길을 잘 찾아가는 여자들이 부럽다.

길 감각이 유별나게 뛰어난 한 사람을 알고 있다. 20여 년 전 처음 미국 와서 살았던 애리조나의 한 조그마한 도시에서 주재원 가족으로 함께 살았던 미야 엄마, 나보다 보름 후에 도착한 그녀는 온 지 며칠 만에 도시의 구조를 거의 파악한 것 같았다. 동서와 남북으로 뻗은 길의 특징, 지름길과 스톱 사인이 많은 길, 마켓.병원.학교가 어느 길로 통해 있는지 등 길의 구성을 환하게 꿰고 있었다. 시내만 간신히 운전하고 다니는 나와는 달리 근교 다른 도시에 쇼핑도 갔다 오고 프리웨이를 씽씽 달려 여행도 다녀오는 그녀를 우리는 '길 박사'라고 불렀다.

아무튼, 한동안 110번 도로가 뻥뻥 잘 뚫려 이젠 걱정 끝이구나 했는데 또 막혔다. 스마트폰이 있는데 뭘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그 방면에 스마트하지 못한 나는 또 걱정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나 같은 불편을 겪은 누군가가 건의를 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모르지만, 다음 출구로 나가자마자 '디투어(detour)' 표지판이 있어 다른 진입로를 쉽게 찾았다. 얼마나 고마운지, 마음의 손이 절로 흔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길눈이 밝지 않아 수시로 헤맨 나의 인생길 곳곳에도 '디투어 길'이 준비되어 있었던 게 확실하다.

미주 중앙일보 2014.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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