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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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6월이 왔다

2022.06.16 17:46

조형숙 조회 수:53

수연이가 스무살 되던 해 6월, 그 날 태양은 참 뜨거웠다엄마와 이별하기 위해 양지 바른 언덕 길을 힘을 다해 올라 간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은 턱에 차 올랐다. 하얀 광목으로 치마 저고리를 입고 긴 머리는 뒤로 묶었다오른쪽 다리에는 허벅지까지 깁스를 하고, 양쪽 겨드랑이는 크러치를 의지한 채 높은 언덕 매장지를 향해 올라갔다. 수연이는 땅바닥에 엎어져 가슴을 쥐어 뜯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 해 정월 초하루, 친구들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불렀다. 엄마는 “여자가 정초 부터 나다니는 것 아니다. 다음 날 가라”고 말씀하셨다. 가고 싶었다. "보내 주세요. 가면 안돼요?" "안됀다." 스케이트는 안방의 다락 안에 있어 꺼낼 수가 없었다. 친구가 롱스케이트를 빌려 주었. 피규어 스케이트만 탔던 수연이는 롱스케이트가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았다. 얼음이 조금 녹아 있던 곳에 스케이트의 날이 박히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정신을 잃었다. 오른쪽 다리 종아리 뼈가 부러졌다. 멀쩡하게 나간 딸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친구들에게 부축받아 들어왔다. "엄마!" 고개숙인 딸에게 엄마는 "얼마나 아팠니? "아무 말씀없이 안아 주셨다.

 

부러진 종아리에 깁스를 하고 지낸 지 석 달이 넘어도 수연이는 일어서지 못했다.  기차를 타고 큰 병원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뼈는 날카롭게 사선으로 부러져 있었고 살이 그 사이를 들어가 자라고 있었다. 깁스를 떼어내도 걷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스케이트장에 지정해 놓은 백차가 실어다 준 병원에서 엑스레이 촬영도 하지 않고 그냥 깁스만 해 주었던 결과였다. 

 

 병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큰 길에는 많은 사람이 꽃놀이로 붐비고 있다. 눈처럼 날리는 벚꽃 잎이 화사했다. 수연이는 뼈를 다시 고정하고 백금나사를 박는 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한 달 후인 6월에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다.   

 

스케이트가 돈다. 기차가 달린다. 벚꽃이 휘날린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 다시 6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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