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9
어제:
24
전체:
1,292,462

이달의 작가
수필
2022.06.17 15:01

질투는 나의 힘

조회 수 128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질투는 나의 힘’

오래전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질투는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주인공이 여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다시 읽으며 이 영화가 기형도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과 올해 칸 영화제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의 작품이라는 것도 알았다.  영화가 기형도의 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검색해 보았다. 문학청년인 주인공은 사랑을 찾아, 사랑 없는 얼굴로 헤매고 있는 시속의 기형도 이미지로 가득했다. 여러 가지 결핍으로부터 생겨난 욕망에 허덕이는 서글픈 영상이 남아서인지, 기형도의 질투뿐이었다는 그의 희망의 내용과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마지막 구절이 새삼 먹먹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질투는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상황에 있을 때 미워하는 것을 뜻한다. 개인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나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질투가 삶의 동력이나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는 정신건강 의학상의 의견도 있었는데, 종합해보니 적절한 감정 조절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의 감정에 휘둘리면 마음의 평안함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는 것과 마음의 평안 없는 행복이 드물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단어 질투, 그 반대말이 무얼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부러움, 선망, 동경, 아량, 존경, 무관심, 멸시, 무시 등등 의견이 분분했는데, ‘축하, 칭찬, 찬사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스스로 타인과의 비교에서 점점 멀어지고 내가 내 삶의 기준이 되어가고 있더라’는 글이 마음에 진하게 와 닿았다.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질투의 반대말은 ‘컴패션(compassion): 다른 사람의 행복을 기뻐하는 마음’이라는 구절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최근 내 친구들의 소박한 행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기쁨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들고 뒷마당에 나갔는데 햇살이 어찌나 좋던지, 커피잔을 꼬옥 쥐며 자신도 모르게 ‘아 행복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나는 종종 커피잔을 들고 나가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며 행복감에 젖는다.  
 
큰 사업가였던 두 번째 친구는 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지속적인 항암 치료와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 오고 있다. 운동으로 골프를 시작했는데 그린 잔디 위에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 ‘아, 나 살아있구나’ 하는 감격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전율이 이는 듯 행복하다.  
 
그다음 친구는 자기 자녀가 없는 대신에 이웃 친구 아이들을 챙기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는데 친구 아이들 가방 사주고 싶다며 이것저것 고를 때 신나 하는 표정이 오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친구들의 크고 작은 삶의 애로가 온전히 내 것이 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될 수 있는 오랜 인연에 감사하다. 컴패션, 그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있겠지만 행복의 길을 제시해 준 것은 확실하다. 평생 경쟁 속에서 질투하며 살아가는 관계는 드물다. 인연의 시야를 조금 넓혀 감정 조절에 애쓰면 그만한 가치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2022년 6월 13일 지면

?
  • 문소 2022.06.18 07:30
    요즈음같은 물절만능의 세상에서는 행복하기가 쉽지않은데도...
    친구들의 소박한 행복,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동감합니다!
  • 오연희 2022.06.19 13:39
    외로운 이민의 삶에서는 사실 나눌게 참 많은데...
    질투의 신이 왕림하면 한량없이 어리석은 사람 되는 것 같아요
    그저 인연의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해 보는 거지요
    동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9 수필 [이 아침에] 멕시코 국경 너머 '오늘도 무사히' 8/28/14 오연희 2014.08.30 540
368 수필 [이 아침에] 멕시코에서 생긴 일 오연희 2013.04.30 485
367 수필 [이 아침에]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나이 12/19/2014 오연희 2014.12.30 236
366 수필 [이 아침에] 못 생겼다고 괄시받는 여자 1/24/2015 오연희 2015.01.25 56
365 수필 [이 아침에] 부족함이 주는 풍요로움 오연희 2013.08.28 559
364 수필 [이 아침에] 북한 여성 '설경'에 대한 추억 오연희 2013.10.21 591
363 수필 [이 아침에]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5/8/2014 1 오연희 2014.05.08 414
362 수필 [이 아침에] 불편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들 10/29 오연희 2013.12.08 690
361 수필 [이 아침에] 산책길에서 만난 꽃과 사람 6/20/14 1 오연희 2014.06.20 498
360 수필 [이 아침에] 선물을 고르는 마음 오연희 2012.11.27 668
359 수필 [이 아침에] 성탄 트리가 생각나는 계절 11/13/2014 오연희 2014.11.26 389
358 수필 [이 아침에] 슬픔마저 잊게 하는 병 오연희 2013.07.31 486
357 수필 [이 아침에] 아프니까 갱년기라고? 7/15/14 1 오연희 2014.07.17 522
356 수필 [이 아침에] 애리조나 더위, 런던 비, LA 지진 4/7/14 오연희 2014.04.09 478
355 수필 [이 아침에] 엄마표 '해물 깻잎 김치전' 오연희 2013.02.15 994
354 수필 [이 아침에] 연예인들의 가려진 사생활 오연희 2013.04.30 716
353 수필 [이 아침에] 우리 인생의 '하프 타임' 7/2/14 1 오연희 2014.07.17 291
352 수필 [이 아침에] 이육사의 '청포도'는 무슨 색일까? 오연희 2013.09.25 806
351 수필 [이 아침에] 잘 웃어 주는 것도 재주 오연희 2013.02.15 670
350 수필 [이 아침에] 제 잘못 모르면 생사람 잡는다 오연희 2013.07.31 58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