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전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호승시인의 글

2009.06.03 06:59

오연희 조회 수:572 추천:100

▲ 정호승·시인 우리는 지금 슬프다 대통령이 희망이 없었다면 우리의 희망은 어디 있겠는가 그의 죽음을 뒤따라맑은 종소리는 들리는데... 대통령은 세상을 버릴 자격이 없다. 오늘 국민장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깊은 슬픔과 통곡 속에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한명숙 전 총리께서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셔서, 내가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했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대통령께서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셨을까, 도무지 머릿속은 하얘지고 가슴은 멍멍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충격 속에 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바로 대통령은 스스로 세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데 대통령이 그러시다니….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목숨을 던진다 해도 안 되지만 대통령은 더더욱 그럴 자격이 없다. 대통령이 세상을 버리셨다는 것은 국민인 내가, 나아가 국가가 그렇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죽음을 대통령의 '서거'로 받아들이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그 서거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분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아직도 멍멍하다. 노 대통령을 극단적인 고통에까지 몰고간 여러 외인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노 대통령께서는 결코 그 길을 선택하지 말아야 했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께서는 살아계셔서 끝까지 진실을 밝히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죽음으로 덮어버리셨는가. 덕수궁의 대한문 앞에서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한 모자(母子)를 지하철에서 봤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검은 리본을 보자 새삼 대통령을 잃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고 그 현실은 비통으로 이어졌다. 엄마는 아이에게 노 대통령이 스스로 절명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그리고 그 아이는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죽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혹시 그 아이는 자결과 죽음을 동의어로 이해하지는 않았을까.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은 결국 희망이 없을 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을 때, 삶 자체가 죽음일 때 스스로 목숨을 던진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희망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또한 희망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노 대통령이 세상을 버릴 정도로 희망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우리에겐 어떤 희망이 있는 것인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수없이 희망을 이야기해왔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오뚝이처럼, 흙을 뚫고 나오는 봄날의 죽순처럼, 단단한 아스팔트의 틈새를 뚫고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희망으로 피어나자고 했다. 노 대통령의 죽음은 우리의 희망의 죽음이다. 우리는 지금 희망을 잃었다. 노 대통령을 잃은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었다. "대통령도 살기 힘들면 죽는데 나 같은 것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두렵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겼을 때만 허락되는 말이다. 생사불이(生死不二)라고 해서 우리는 생을 함부로 내던질 수 없다. 생이 있기 때문에 사가 있는 게 아닌가. 사가 있기 때문에 생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도 나는 노 대통령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그의 죽음을 어떻게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이것은 국민인 나의 숙제이자 우리 국가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께서 쓴 유서에는 우리 국가의 앞날에 대한, 통일 조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당부의 말씀이 없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국민에 대한 어루만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 그러셨을까. 우리는 지금 슬프다. 슬프다 못해 노 대통령을 따라 죽고 싶다. 노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전 대통령들의 제왕적, 독재적 모습에서 대통령도 바로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온 분이었다. 그러나 죽음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누구나 그분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분의 죽음 자체는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분은 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가. 오늘의 국민장을 비통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죽음은 곧 국민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장을 치른 우리는 지금 국민이라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는 이제 기다려야 한다. 사람은 죽은 뒤 그 관을 두드렸을 때 나는 소리의 청탁(淸濁)에 의해 역사가 평가를 내린다. 이제 노 대통령은 우리 곁을 떠났다. 부디 그에게서 맑은 종소리가 들려오기를 소망한다. 그분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의 힘들고 지친 가슴속에 한줄기 맑은 바람이 끝없이 밀려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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