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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현장엿보기]아휴, 속터져!

2003.09.04 05:29

오연희 조회 수:348 추천:67

아휴, 속터져!

한국에 살 때 필자의 딸은 학교가 끝나자 마자 아파트 상가 안의 피아노 학원에 가서 매일 레슨을 받았다. 물론 한국에서도 수준이 높아지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횟수가 적어지기도 하지만 그 당시 딸은 피아노의 기초 실력을 쌓고 있던 중이라 매일 학원을 다녔다.

그렇게 피아노 레슨을 받다가 미국에 왔기 때문에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레슨을 받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서 만난 개인레슨 선생님이었던 Mrs. 존스는 “모든 교육은 시간을 길게 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음악교육은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음악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가르친 한인학생들의 부모들은 단기간에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슬쩍 한마디 하는데 괜히 필자의 가슴이 뜨끔했다. 음악은 한곡 한곡이 품고 있는 필링을 제대로 알고 연주해야 한다며, 아이들은 인생경험이 적으니 감동적인 비디오나 영화를 보여주고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미국에 사는 많은 한인 어머니들이 자녀에 대해 갖는 불만 사항 중에 하나는 ‘세상 바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한 아이들의 생활 태도일 것이다. 필자도 유난히 행동이 느린 딸을 보면서 “아휴! 속 터져!”라고 탄식을 쏟은 적이 있다.

가만히 보니 딸보다는 성격이 괄괄한 아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세우는 방학 계획을 보니 엄마가 보기에 너무 느슨하다. 좀더 팽팽하게 스케줄을 짰으면 하는 마음은 들지만 간섭하는 것이 될까 봐 침만 꿀꺽 삼킨다.

“우리 애는 정말 행동이 느리고 답답해요!”라고 한마디 하면 “우리 애는 더해요!”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 엄마들이 많다.

필자의 속터졌던 마음이 저리가라 싶게 사연도 가지가지다. 정말 우리 아이들은 세상 바쁜 것이 하나도 없는 답답한 아이들일까 어쩌면 자신의 일을 잘해 나가고 있는데도 한국에서 교육받은 우리 부모들의 눈에 그렇게 비쳐지는 점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진학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 앞에 우리 자녀들이 더욱 열심히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은 저만치 앞서가서 아이들에게 어서 달려오라고 재촉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Mrs. 존스의 말을 다시 생각하며 현실의 자리에 필자의 마음을 갖다 놓는다.

욕심낸다고 되지도 않을 일인데 마음의 평안만 잊고 살았다는 자각이 든다. 부모의 마음이 평안하면 아이들의 잘하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차츰 칭찬할 일도 생긴다.

아이들은 칭찬에 용기를 얻고,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열심히 하라고 몰아부쳐 얻는 것 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진작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싶은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에 비해 여유로운 미국의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한 우리 아이들이 가끔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줄지라도 차근차근 자신의 몫을 잘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믿어주자.

누구나 부모자격증도 없이 얼떨결에 부모라는 자리에 앉았다. 부모 노릇을 하면서 부모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고귀한 뜻에 합당한 부모로 성숙해 간다.

하지만 부모라는 고귀한 이름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건 웬일인지 모르겠다.

이메일 문의 ohyeonhee@hotmail.com

입력시간 :2003. 08. 29 19: 12

2003년 9월 2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