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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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특별한 만남

2006.01.23 08:55

오연희 조회 수:521 추천:118

더 세월이 가기 전에 사람 도리도 하고 살아야지 착한 마음먹고 맞이한 지난 연말 필자는 독한 감기로 거의 두 주를 헤매었고 남편은 감기 후유증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얼굴 반쪽이 마비가 와서 한쪽 눈이 잘 감기지 않고 말하거나 웃으면 입이 비뚤어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즉시 가까운 동네 한의원을 찾았더니 2주에서 4주면 100% 완쾌 된다며 조바심 가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 기가 막힌 몰골을 보니 눈물이 나고 방정맞은 생각만 더해져 불안하기만 했다.

얼굴 한쪽이 돌아간 상태로 일상과 다름없이 생활하다 보니 사람들 입을 통하여 병이 알려지고 이곳 저곳에서 같은 증세를 경험했다는 분들이 자신들의 처방 성공담을 알려 오기 시작했다.

흔히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 말라며 위로해 주는 분들의 따스한 한 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그저 지나치던 사람들도 먼저 인사를 건네왔고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는 가운데 소록소록 깊어지는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름다운 기억은 남편의 얼굴이 그렇게 되기 며칠 전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장애우들과 함께한 밤이다.

필자는 감기로 목이 잠기고 몸이 괴로워 종일 끙끙 거리다가 갈까말까 수 없는 고민 끝에 용기를 낸 그 날밤 "12월에 만나는 시와 사람들" 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그 날은 잊지 못할 감동의 밤이었다.

약도 따라 한시간 이상을 드라이브해서 찾아간 어느 조그만 교회에는 젊은 청년들이 열심히 찬양연습을 하고 있었다.

교회 본당을 통과 해서 저 안쪽 하늘의 별들이 내려다 보고 있는 뒷마당에 길다란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몇몇 분들이 장애우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필자도 그들과 함께 뜨끈한 육개장 두 그릇 뚝딱 해치우고 나니 몸이 풀리고 가슴이 따스해져 왔다.

잠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찾으러 본당으로 들어오니 한 청년이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들고 입을 떼려는데 심하게 뒤틀린 얼굴을 가진 그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웃음 가득 담은 풍성한 표정이던지 가슴이 뭉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를 끝냈을 즈음 행사가 시작 되었다. 준비된 순서에 따라 "12월의 특별한 만남" 에 대한 소개를 하려고 사회자가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화장실을 안내해 주던 바로 그 청년이었다. 내 속의 기쁨과 희망을 찾아낸 자의 표정이 저런 것일까 싶은 생각에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몇 명의 시인들과 장애우중에 몇 분이 사랑과 믿음과 인생에 관한 자작시를 낭송하고 아까 연습 중이던 그 청년들이 나와서 찬양을 리드하며 아름다운 12월의 밤은 깊어 갔다.

이 전에 몇 번 뵌 적이 있는 부부 장애우인 두 분을 그 곳에서 또 뵙게 되었다.

장님인 남편 분은 기타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그 아내는 눈물겨운 사랑시를 써서 우리를 울먹이게 했다.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었던 또 다른 중증 뇌성마비 장애우 한 분이 나와서 자작시를 낭송했다.

한 단어를 뱉기 위해 그처럼 힘겨운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표정은 너무도 밝았다. 그의 시 낭송이 끝나자 참석했던 시인 몇 명이 놀라움의 눈길을 주고 받았다. 인생의 깊이를 그처럼 아름답게 묘사하는 그 맑은 영혼에 감동 또 감격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 분께 다가가 시를 따로 공부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적은 없고 100편 정도의 자작시를 가지고 있다며 가족처럼 보이는 주위의 몇 분이 말씀해 주셨다.

포근한 사랑의 기운이 교회당을 가득채웠고 그 사랑에 취한 듯 장애우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분들을 둘러보며 일어서 나오는데 필자의 부끄러웠던 지난 한 순간이 떠올랐다. LA 오자마자 였으니 거의 5년 전의 일이다. 장애우들을 돌보는 센터에서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과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날 사랑으로 알았던 내 속의 알량한 동정심에 스스로 손을 들고 말았다.

선천적인 장애도 있지만 교통사고를 비롯한 여러가지 돌발적인 사고로 장애가 될 확률이 적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언제 어떤 심각한 불편함을 경험할지 모르는 예비 장애인이다.

이세상에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누구나 조금씩의 모자람 불편함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참으로 큰 의미로 보낸 12월이었다.

ohyeonhee@hotmail.com



신문발행일 :2006.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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