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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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여행기4) 한해의 마지막 날 12/31/03

2004.11.15 11:33

오연희 조회 수:642 추천:73

유타주의 Monument Valley에 있는 Goulding Lodge 에서 2003년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이해의 마지막 태양이 뜨는 광경을 보면서 참으로 묘한 감회에 젖었습니다.

오늘의 태양은 2003년이고 내일 뜨는 태양은 2004년이 된다고 하는 그 말에 반기를 들고 싶은 이상한 충동 같은것 말입니다. 세월이 간다고 할 때 인간인 우리는 정지 상태에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죽음 쪽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은 인간이고 세월은 그냥 가만 있는 것 같거던요.

년, 월, 시는 인간이 만들어낸 단위고 그리고 계절의 변화 앞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서요. 그렇다면 세월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고 인간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요? 참으로 오묘한 모습으로 인간의 눈길을 끄는 Monument Valley의 저 바위덩어리들은 약간의 변형은 있을 수 있겠지만 큰 지상이변이 없는 한 저 모습 저대로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저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요? 그런데 전 50년 후에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글쎄 모르겠네요. 저의 시댁이 90세 이상 장수하는 집안내력이 있으니 시집기운이 저한테 쭈욱 뻗쳐 장수하게 될지….

확실한 것은 100년 전에 그리고 100년 후엔 나와 다른 시대의 인간이 저 기가 막힌 자연현상을 보고 감동했을 거구 그리고 감동하고 있겠지요. 억겁의 세월 중, 2003년 12월 31일 나와 맺어진 소중한 인연인 남편, 딸 그리고 아들과 이순간을 함께 한다는 이 사실이 기적이라면 기적이지요.

그러고 보니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말에 제가 좀 감성적이 되었나 봅니다. 정말 전 못 말리는 감성파인가 봅니다. 흠흠…정신 차리고 나니 제 배속에서 “ 주인아줌마! 먹을 거 좀 빨랑 넣어 주세요! 꼬르륵^^ “ 하더군요.

전기밥솥에다가 물을 팔팔 끊여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온 육개장 사발면에다가 조심스럽게 붓고 어젯밤에 읽던 책으로 사발면 뚜껑위에 얻었습니다. 면이 살짝 퍼졌을 때쯤 김치, 깻잎 그리고 김을 꺼내놓았더니… 그 전날 먹다 남은 찬밥도 쓱 집어넣어선 에구.. 며칠 굶었나…아침부터 엄청들 잘먹더라구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 이 찬송가 보다는 역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의 주기도문의 구절이 더욱 절실한 인간의 문제인가 봅니다.

가족들! 우리도 수준좀 높입시다!!
휴! 먹느라고 듣지도 않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