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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어느 목회자의 감동적 유언장

2007.08.20 04:16

오연희 조회 수:365 추천:43

"흔적 이 땅에 남기지 말아주오 '빈손’으로 떠난 시골목사의 유언장 잔잔한 감동 "내가 죽은 뒤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 평생을 가난한 시골교회에서 목회활동을 벌이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난 한 목사의 유언장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던 중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소천한 추평교회(충북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허이(虛耳) 전생수(향년 52세) 목사의 유언장이 그것이다. 전 목사는 ‘목사님’ 칭호보다 별호인 ‘만득이’로 불려졌는데, 이는 ‘촌놈’이란 의미로 스스로 붙인 것이다. 21일 장례예배에서 아들(보람)에 의해 공개된 유언장에는 부인과 1남 1녀 등 가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고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짧은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지난해 사순절 첫 날(2월25일)에 작성된 이 유언장에서 고인은 먼저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라고 적어 가난한 목사의 삶을 행복에 겨워하고 있다. 유언장은 이어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 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 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자신이 병환과 죽음에 임했을 때 주변에 몇가지 당부의 말을 남기고 있다. 고인은 그 다음에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힙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면서 시신 기증과 화장에 대한 유언을 남겼다. 또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푯말이나 비석 따위 조차도)”며 “와서 산 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라고 밝혔다. 유언대로 전 목사의 장기는 기증됐고 나머지 시신은 화장돼 고향인 인제 산야에 뿌려졌다. 전 목사의 친구인 박철(시인) 목사는 “전 목사는 20년 동안 농촌목회를 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며 “유서에 사모님과 자녀들에게 언급이 없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의아하기도 했지만, 이내 전 목사의 속깊은 마음을 알 듯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전 목사는 유족이 기거할 거처는 물론 단돈 10만원도 남기지 않았다”며 “주변에서 유족후원회를 만들어 조그만 전세방이라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계좌:농협 417130-52-072699 전한나)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