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 안 그리마 / 성백군

by 하늘호수 posted Jul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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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안 그리마 / 성백군

 

 

 

이른 아침

싱크대 바닥에 그리마 한 마리

갑자기 켜진 전등 불빛에

발이 묶였다

 

빨리, 수챗구멍으로 숨어 버리면

저 좋고 나도 좋으련만

그동안 사람 곁에서 배운 것이 있다며

보무도 당당하다

 

저걸, 그대로

손가락으로 문질러 죽이자니

그것도 생명이라 마음이 움츠러들고

살려 보내자니 몸이 근질거린다.

 

물로 씻어

산채로, 수챗구멍으로 흘려보내고

잘했다고 안위(安慰)하는 마음도 잠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시 기어 올라와야 하는 그리마가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사는 게 다 죄짓는 일이다

 

   1405 - 070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