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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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사춘기의 천사들

2009.08.31 12:48

오연희 조회 수:656 추천:104



몇해 전 어린이 합창단을 지휘할 때이다. “자, 이제 시작한다. 어서 들어와라” 하고 소리치니 아이들은 악보를 펼쳐들고 나를 기다린다. 휘-익 전체를 둘러보니, 어김없이 세 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창 노래수업 중간에, 문을 팍! 열어 제친 세 학생은 주위에 아랑곳 않고 당당히 들어온다. 나는 그들을 향해, “너희들 셋 나가! Get out!” 하고 소리쳤다. 계속되는 지각을 참아주다가 드디어 세 아이들을 수업에서 내쫓으며 선생의 권위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곤 씩~씩 거리며 수업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깔깔깔 노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내쫓긴 아이들은 지각한 것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하며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화가 끓어오른 난 가재미 눈으로 그 아이들을 째려보며, “니네들 왜 밖에 나갔는지 알아?” 하고 물었더니, 그 셋은 일제히 양 어깨만 들썩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약이 바싹 오르며 맥이 탁 풀려버렸다. 속이 타서 물 한 모금을 벌컥 들이킨 나는 무리지어 다니며 분위기를 흐리는 그들의 행동이 단체행동에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를 훈시를 한 후 다시 노래연습에 들어갔지만 그 연습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언뜻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살펴보니, 인자하던 미소는 간 데 없고, 치켜 올라간 양 눈초리는 좀처럼 내려오질 않았다. 게다가 입술마저 경직되어 말도 버벅 대었다.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선생이 되었다~ 싶은 서러움에 눈물까지 글썽거려, 하는 수 없이 눈을 감아가면서 수업을 서둘러 마쳤다. 부글부글 끓던 마음의 불을 끄려고 그 학생들 또래를 키우는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그 친구 왈,   “얘, 그 애들 사춘기다~” 하는 말에 나는, “사춘기가 뭐니?” 하고 반문이 나왔다. 미국서 중고등 교육도 받지 않았고 아이들도 키워보지 않은 내가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상벌개념이나 심리도 모르면서 ‘교육자’로 나선 모습이 참으로 한심했다. 나이는 훌쩍 중년을 향하고 있었지만, 어린 마음을 한 번 헤아려 볼 겨를이 없었던 나! 그 친구와의 대화로 청소년들에 대한 나의 이해부족을 보게 되었다. 조카가 여섯이 있었어도 좋았던 모습만 보아왔던 터라, 변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무뎌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음악에만 몰두하느라 혼자만 생각하고 바쁘게 살던 나는, 마음의 시야가 너무나 좁아 있었던 ‘노처녀’ 이모요, 고모이자, 선생이었다. 그 다음 주, 그 아이들은 일찌감치 악보를 양손에 착 들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아! 이 감격!    “그 아이들을 또 어떻게 대할까” 하였던 마음으로 연습으로 향하였던 불안은 사라지고, 화를 낸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지는 가운데 아이들의 얼굴이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비로소 내가 환한 미소로 다시 아이들을 감싸면서 연습에 들어가니 합창단원들은 물론 지켜보던 학부형들까지도 나와 한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 몇 달간 열심히 맹훈련을 마치고 훌륭한 연주회를 마무리한 합창단은 그 얼마 후에 있었던 나의 결혼식에서 예쁘게 축가를 불러주었다. 지금도 내 가슴에는 함께 인내하던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의 천사 같이 밝은 모습이 소중하게 새겨져 있다. - 글 김 양희 - (차호원박사님 추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