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지리 (종다리 · The Lark)

2012.03.22 22:05

arcadia 조회 수:782 추천:12




노고지리 (종달새 · 종다리 · The Lark)/2006년 04월 10일 10시 12분




























































































  글링카 / 종달새    Mikhail Glinka / The Lark (Zhavronok) / Evgeny Kissin, Piano

  원래 '종달새' 는 글링카가 1840년에 작곡한 곡인데, 사랑과 자연을 시적으로 표현한

  가곡입니다. 이곡을 발라키레프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것을 피아노의 귀재

  에프게니 키신의 연주입니다.











 
보리밭 · 종달새







겨울 얼어붙었던 들판에 새순이 돋아나
연록색으로 물들여지는

4월이 오면, 집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판에 나와 무작정 보리밭 두렁길을
헤매이며
내달리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던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에 외로워 휘파람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녘 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박화목 시 윤용하 곡의 “보리밭” 中에서-


  메조 스프라노 김학남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곡 중의 하나가  ‘보리밭’    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보리밭 사잇길을 걷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게 하는 소리.
그것은 초록 물결이 일렁이던 동심이기도 하고, 가슴을 불태우던
젊은 날의
환상이기도 하다.


나에게 보리밭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보리를 심은 들판에 울려 퍼지는
종달새 노래 소리다.
종달이, 노고지리로 불려지기도 하는 종달새는 추위가 가시고 산천초목이 연두색의 봄옷을 갈아입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구애의 노래 소리가 요란하다. 언뜻보면 찾을 수 없을만큼 아지랑이 엷게 깔린
봄 하늘에 한 점
티끌처럼 높이 떠서 짝을 찾아 우짖는
그 작은 새의 노랫소리가 그리도 온 들판을
가득 채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우리 주변에서는 보리밭을 보기도 힘들뿐더러 더욱이
종달새는,
그런 새가 이 땅에 있었을까 할 정도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몇 해 전 초봄, 나는 문화단체의 전방지역 답사팀에 끼어 서울북방의 전방관측소와 판문점을 다녀오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임진강에 철로와 다리가 연결되어 강 건너 도라산 역까지 육로가
개통되기 전이다. 버스에 승차한 40여 명의 우리 일행은 통일로 종점 임진각에서 잠시 휴식한
후, 임진강 가교를 건너 남북이 대치한 분단의 현장으로 향했다. 도라산 관측소, 오늘에는 도라산
전망대로 일반에 공개된 그곳에서는 남북을 갈라놓은 군사 분계선의 철책과 그 건너편 북쪽의 산야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내 장교가 주변정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지만....,


나는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북편으로 내려다보이는
구릉과 들판 이곳 저곳을 눈길로 더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반세기를 격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과 그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릉처럼 얕으막한 산줄기가 감싸안은 두루뫼 마을, 그래서
두루뫼(周山)라는 이름이 붙여진 50여 호의 고향마을을 대하고
있었다.
동네 한 가운데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고 마을 어귀 방앗간을 벗어나면 오리길 초등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대장간과 놋전이 있었던 두루뫼, 그러나
지금 눈앞에 모습을 나타낸 그곳에는 잡목과 억새풀이
들어찬 굴곡진 들판일 뿐, 마을과 집이 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봄이면 나무꾼을 따라
칡뿌리를 캐고 진달래를 꺾으러 다녔던, 지금은 북쪽에 속해 있는 덕물산, 노적산, 천덕산이
건너다
보이고, 그 앞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사천내는 예전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마을이 있던 흔적은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하얀 모래사장을 끼고 흐르는 사천내 주변은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다.






노고지리 지지배배....

종달새 소리가 들판을 가득 메우고,
내 주변에 심은 밀 보리가 한자쯤
자랄 무렵이면
종달새 둥우리를 찾으러 보리밭을 누비고 다녔다. 그 때
우리동네에는 종달새를 조롱에 넣어 키우는 이웃이 있었고,
나도 종달새를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자면 종달새 둥우리를 찾아 새끼종달새를 잡아다가
키워야 하는데 그 일이 쉽지가 않았다. 어른들의 눈을 속여 학교까지 결석하고 보리밭을 헤메이던
나는
드디어 보리밭 이랑 잡초사이에 숨겨진 종달새 둥우리를 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들은 털도 나지않은 어린 것들이어서

어미 새가 더 키운 다음에 가져오기로 하고 그냥 돌아왔다. 다음날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무섭게 책가방을 내던지고 보리밭으로 달려나가 새둥우리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였다. 종달새 새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잿빛 털이 돋아나고 어미 새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이제는 그만 가져다가 길러도 되겠다 싶은
어느 날, 둥우리의 새끼종달새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크게 실망했다.

그 이후 나는 종달새를 키워보려던 어릴 적부터의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다 고향이 생각나고
유년시절이 떠올려지면 버릇처럼 연상되는 것은
사천내 주변의 보리밭이었고, 화창한 봄날 아지랑이
아물대는 하늘을 가득
채우는 종달새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도라산 전방관측소에서 잡초 무성한 구릉지로 변모된 고향마을에서 눈길을
돌려 연녹색으로 물들여지기
시작하는 들판 위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혹시나
종달새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함께 간 일행의 두런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 사위는 너무나
조용했다. 산란기의 종달새가 구애의 노랫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이른 철이라는 생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글 : 강위수 / 소설가, 두루뫼 박물관 관장














[우리 시와 방언]


노고지리



국민학교 5학년 때 해방을 맞고 한글을 깨치고 나서
처음 읽은 책이
방정환의 동화집과 함께 이원수, 박영종의 동요집이었다.
박영종의 "초록별"
은 지질이 좋았는데 근자에 구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구경을 못하고 있다.

박영종이 시인 박목월의 본명임을 나는 훨씬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원수의 "종달새"는 지질이 좋지 않은 시커먼 재생지로 되었는데

두께도 "초록별"에 비해서는 얇은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종달새는 아주 흔하디 흔한 새였다.



봄철에 보리밭에 가면 으레 종달새가 떠있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새 자체가 생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고향쪽에서는 흔히 노고지리라

했다. 별명으로도 많이 써서 말이 많고 조금 시끄러운 사람에게 노고지리란

별명이 따라 붙었다. 그 흔하디 흔했던 종달새 소리도 요즘엔 여간해서는

듣기가 어렵게 되었다. 시골에 가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원수의 "종달새"는 이렇게 시작된다.


종달새, 종달새

너 어디서 우느냐.

보오얀 봄 하늘에

봐도 봐도 없건만

―비일 비일 종종종

비일 비일 종종종



종달새 소리를 "비일 비일 종종종" 이라 한 것은 이원수의 창의다.

정지용이 "지리 지리 지리리" 라고 한 것과 대조가 된다.
그러나 보아도
보아도 종달새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과는 얼마쯤 거리가 멀다.

보리밭에서 올라갔다 내려 갔다 하는 종달새의 모습은 곧 눈에 뜨이기 때문
이다.
얼마 후 남구만(南九萬)의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를 접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종달새보다는 노고지리가 더 그 새에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쪽에서 흔히 쓰이는 이름 때문이기도 할 것
이다.
그렇지만 그 점을 떠나서도 무엇인가 어감(語感)상으로 느긋하고

그 울음소리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 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니

재넘어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사전에는 노고지리가 옛 말로 취급되어 종다리를 일단 표준말로 지정하고

있다.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는 옛 시조의 말이 표준말인 셈이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서는 노고지리가 엄연히 현대에도 쓰였다. 현대시에서도
자주 보이는 말이다.
대체로 동요나 동시에서 종달새라고 하는 반면
어른들의 시에서는 노고지리라고 쓰이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통계상으로도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항시 날아 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라

―조지훈, "마음의 태양"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었습니다


―서정주, "다시 밝은 날에"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김수영, "푸른 하늘을"







삼동내 얼었다 나온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어머니 없이 자란 나를

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왜 저리 놀려대누.

해바른 봄날 한종일 두고

모래톱에서 나 홀로 놀자.


―정지용, "종달새"




모빠상의 단편 "목걸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교부 장관의 초대를 받고 하위직 공무원의 아내가 친구에게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가지고 만찬에 참가한다.
그렇지만 그 목걸이를 잃어버려
꼭 같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빚으로 사서 돌려주고 그 빚을 갚기 위해

10년이란 세월을 보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목걸이는 싸구려 가짜였다.

10년 간 헛수고를 하며 젊음을 탕진한 것이다. 맨 처음 초대장을 보았을 때
그녀는 입고 갈 옷이 없다고 푸념하였다.
남편은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고 그녀는 4백 프랑이면 쓸만한 것을 사 입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남편은 친구와 함께 일요일 종달새 사냥을 다닐 요량으로 엽총을 사기 위해 저축한 돈이 마침 4백 프랑 정도 있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프랑스에서는 종달새 사냥을 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는 종달새 소리를 내는 "종다리 피리" 란
피리가 있다. 종다리를 잡아서 새장에 가두어 두고 새소리를 들은 것이다.

멘델스존의 "종달새의 노래" 란 합창곡을 들어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 유종호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 - 베니스의 미로를 흐르는 선율 arcadia 2015.06.22 10153
공지 [한 컷의 과학] 지구는 또 있을까 ~ 노벨상 1 - 15 回 arcadia 2015.06.14 18335
공지 음악, 나의 위안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arcadia 2015.06.03 1556
공지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프란치스코의 기적을 소리로 arcadia 2015.06.03 8626
공지 버클리문학회초청 문학캠프 특강의 소감 · 이용욱 교수 [1] 유봉희 2015.05.08 8431
공지 용재 오닐의 슬픈노래 中 ‘장미와 버드나무’ arcadia 2015.05.03 3428
공지 모차르트 ‘편지 이중창’ - 산들바람의 노래 arcadia 2015.04.28 3161
공지 '음악이 있는 아침' - Alice Sara Ott plays Chopin arcadia 2015.03.29 1462
공지 TV문학관 메밀꽃필무렵 - 이효석 arcadia 2015.03.26 2448
공지 TV문학관 소나기 - 황순원 원작 arcadia 2015.03.25 5066
공지 ‘봄비’… 김소월 유봉희 2015.03.19 11362
공지 미당탄생100년 - '바이칼' 호숫가 돌칼 外 arcadia 2015.01.18 866
공지 특집다큐 - 玆山魚譜 200주년 新자산어보 2부작 arcadia 2014.12.23 481
공지 겨울왕국 - Frozen - Let It Go 유봉희 2014.05.01 486
공지 버클리문학산행 ㆍ Mt.Tamalpais & Bear Valley 유봉희 2013.02.11 2374
공지 2014'시인들이뽑는시인상'수상(유봉희·한기팔) [1] 유봉희 2014.09.25 842
공지 2014 '시인들이뽑는시인상' 시상식장에서 - 유봉희 유봉희 2014.12.13 1842
공지 슈만 - 여름날의 평화 (Sommerruh ) [1] ivoire 2011.06.03 2443
공지 Steinbeck Center / Berkeley Literature [1] 유봉희 2010.07.23 3505
공지 윤동주 문학의 밤 - 버클리 문인들 [1] 유봉희 2009.09.08 1667
공지 Fine Art Exhibition · 유제경 展 [2] 유봉희 2009.06.17 9461
공지 MOM's Paintings / 어머니의 오솔길 · 유봉희 [1] 유봉희 2009.04.20 2337
공지 Wallnut's Spring / Ducks & Egg Hunting'09 [1] 유봉희 2009.04.15 1303
공지 인생덕목 (人生德目) /김수환 추기경 말씀 [1] 양승희 2009.02.27 1430
공지 Bear Creek Trail [1] 유봉희 2008.12.30 1689
공지 Earth and Environment arcadia 2009.01.06 1502
공지 산와킨강 · San Joaquin River-&-Wallnut [1] 유봉희 2008.10.25 1856
공지 [KBS 시가 있는 음악세계] 소금화석 [1] Amellia 2007.06.07 1902
공지 내 별에 가다 [1] 박영호 2006.09.30 1863
159 [2012 임진년 새해] … ‘하늘에서 본 한반도’ arcadia 2012.01.01 404
158 MBC 특집 · 남극의 눈물 · 1 & 2 부 arcadia 2012.01.14 436
157 隱遁의 삶을 통해 · Alone in Baikal arcadia 2012.01.16 1284
156 MBC 특집 · 남극의 눈물 · 3 & 4 부 arcadia 2012.01.27 1180
155 TED talk · sings Old Poems arcadia 2012.01.28 1043
154 SBS스페셜 · ‘맨발의 아이들, 선생님 되다’ arcadia 2012.01.30 858
153 세상모든다큐 - 미국, 400년의 도전 1-2-3-4-5 부 arcadia 2012.02.16 2246
152 미국 1 달러속의 비밀 & 지구종말 2012년 arcadia 2012.02.16 936
151 지식나눔 콘서트 아이러브[人]… 인문학교수 특강 arcadia 2012.02.20 1188
150 KBS글로벌기획 · <이카로스의 꿈> … 프롤로그 arcadia 2012.03.03 796
149 KBS글로벌기획 · <문명의 기억> 지도 1-2-3-4부작 arcadia 2012.03.04 1734
148 즐거운 편지 … 黃東奎 arcadia 2012.03.07 722
» 노고지리 (종다리 · The Lark) arcadia 2012.03.22 782
146 <꽃밭에서> … 이렇게 좋은 날에 arcadia 2012.04.19 8518
145 또 하나의 지구를 찾아서 外 2 · 김희봉(수필가) 유봉희 2012.06.13 640
144 서양화가 윤심주씨 사라토가 개인전 유봉희 2012.06.21 759
143 축하와 감사^^** 오정방 2012.06.26 399
142 ‘Autumn Rose’ · Ernesto Cortazar 外 유봉희 2012.07.10 742
141 Mars Curiosity … 큐리오시티 · 화성상륙 성공 arcadia 2012.08.08 429
140 ‘Sentimentos’ · Ernesto Cortazar 유봉희 2012.08.13 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