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동혈(偕老同穴)

2008.11.16 08:41

정용진 조회 수:1121 추천:291

                            정용진
부부라는 것은
너와 내가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정감을 나누며
살을 맞대고 사는 것인데
운명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마음대로 안 되나니
잠시라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헛된 꿈을 회개하노라

젊은 시절
수없이 함께 차를 들고
팔 장을 끼며
고궁 돌담길을 거닐던 사람도
가난을 탓하며 돌아가고
외모를 쫒아서 빗겨가고
명예를 택하여 떠나가데

왼손으로 악수하고
불연(不緣)의 운명과 손잡고
떠나간 사람아
이제는 그 형상마저
낮달처럼 낡아갔구나
눈은 흐려지고, 이빨은 빠지고
허리는 굽고, 다리는 안 아픈지
어데서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
나도 어느덧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有矩)의
나이가 되었노라.

오른손 들어
네 하고 답한 죄로
허름한 농부의 아내가 되어
밭이랑에서 이순을 넘긴 아내

이제는 사지육신이 쑤셔
인공연골을 넣으려고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밀려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 不可忘)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 不下堂)을
생각하노라.

이질적인 두 개성이
한길로 향하느라
부싯돌에 불이 번쩍이듯
뜨겁게 살아온 삶
해로(偕老)의 잔해가
벽돌처럼 쌓여있네

천수(天壽)를 다하는 날
미리 마련해둔 로즈 힐 동혈(同穴)에
땀 절어 해진 육신의 헌옷일랑 벗어놓고
훨훨 날아 천국 문 들어가리.

주님이시여! 부디
영생의 축복을 내려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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