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며

2011.09.10 14:57

정용진 조회 수:729 추천:232

거울을 보며
                      정용진

어제는 어린 나를 버리고
오늘은 젊은 나를 버리고
내일에는 늙은 나를 버리리니
이제 남은 것은 흰 백발뿐이로구나.

언제
어느 때
어디서, 어떻게
그런 힘 솟아 마치, 금방 잡아 올려
뱃전에서 펄떡펄떡 뛰던
고등어처럼 푸르고 싱싱하던 나를
버렸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매일 아침 일어나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난다.
반갑다고 말하기 전에
하나 더 희어진 머리카락
하나 더 늘어난 주름살.
오뉴월 무더위 땀방울에 흘러갔나.
동짓달 찬바람 설한풍에 불려갔나.

사십에 눈 어두워오고
오십에 이빨 빠지고
육십에 얼굴에 주름 잡히고
칠십에 머리에 서리 내리고
팔십에 귀 어두워지리니
아깝다.
홍길동처럼 날렵하던 몸매
이몽룡처럼 예리하던 지혜
임꺽정처럼 우람하던 체구
춘향이도 졸졸졸
명월이도 졸졸졸
월향이도 졸졸졸 따르더니
지금은 다 어디 갔느냐?
이제는 저들도 별수 없이 늙었으리라.
억울해도 할 수 없다
분노해도 소용 없다
슬퍼해도 도리 없다.
그래도 무심하게
해는 뜨고 달은 지네.
오늘도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지구는 도는구나.

늙음이여 어서오너라
나는 겁 없이 내식대로 늙으리라.
어디한번
너와나 힘껏 겨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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