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꾼의 삶'에서 값지게 출산한 시편

2003.10.19 15:56

정용진 조회 수:242 추천:53

<작품해설>

미주 이민100년을 맞는 올해 가을에 재미교포시인 정용진의 시집 <금강산>을 상재하게 되었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한지 32년의 힘겨운 삶 속에서 열정적 글쓰기를 지속해온 정용진은 81년에 첫 시집 <강마을>을 내놓은 뒤 네번째 시집을 출간 하므로써 탄탄한 시력을 구축해 왔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에세이집 <시인과 농부>(2001)를 통해서 산문의 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시집<금강산>은 그 표제가 시사하듯이 정 시인이 지난해 가을 조국의 영산 금강산을 찾았던 큰 감동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붙인 제명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시집에는 서장,<가로등>을 비롯<금강산>,<빈 의자>,<통일의 꿈>등 전 4장 80편의 많은 시편이 수록되어 풍성한 목차를 보여준다.
정용진 시인의 시세계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한 길잡이로 시집의 머리글 <시인의 말>의 한 대목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본다.

아이들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캘리포니아 흙을 어머님의 가슴처럼 어루만지며 그 위에 장미꽃을 가꾸고, 농작물을 키우며, 과일 나무들을 심었다. 그 열매들이 소리없이 익어갈 때 산새들도 옆에 와서 노래하였고, 나의 시심도 영글어 갔다. 외면의 표피를 보면 거칠기 한이 없으나 내면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심토(深土)를 만나는 감격 이것이 시인이 시를 쓰고 싶어하는 진정한 마음이다. 육신은 이민의 거친 영토를 갈고, 영혼은 언어의 밭을 가는 쟁기꾼의 삶이 곧 나의 사명이라고 절감 하였다.
이렇듯 정 시인은 이민의 치열한 삶을 살아 가면서 '가난한 나의 시심도 영글어 갔다.'고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육신은 이민의 거친 영토를 갈고, 영혼은 언어의 밭을 가는 쟁기꾼의 삶'을 상기시켜 자신의 시정신을 의연하게 털어놓고 있다. 시인의 진솔한 발언에서 이번 시집의 참모습과 그 각별한 시향(詩香)을 쉽사리 감지하게 된다.
이번 시집 머리시 <시인>에서 정용진 시인의 시에 대한 치열한 도전을 생동하게 접하게 된다.

시인은
언어의 밭을 가는
쟁기꾼이다.

나는
오늘도
거친 언어의 밭을
갈기 위하여

손에 쟁기를 쥐고
광야로 나간다.
-<시인>전문

실상 정 시인은 캘리포니아 광야에서 장미꽃을 가꾸듯 성실한 농심(農心)으로 시를 쓰고 있음을 당당하게 읊어내고 있다. 이미 그는 <시인과 농부>란 에세이집의 많은 글에서 자신의 시작활동을 농부의 삶과 견주어 피력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농부와 같은 순박한 시심을 다짐하는 정시인의 시세계는 '광야'와 같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상이 다양한 무늬로 채색되어 이색적 색상을 드러낸다. 우선 사계의 아름다운 자연을 서정으로 담아내고있는 시<봄>을 비롯한<가을 달>,<무지개>등을 잔잔한 정회로 맛보게 된다. 이들 시편에서 정 시인의 속내깊은 시심이 섬세한 시적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자두나무 가지위에
산새 가족들이
구슬에 꿰인듯
쪼르르 앉아 있다.

하루 일과 훈시를 듣는가
조용하더니
어미 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새끼들도 창공에 무지개를 그린다.

활처럼 휘어졌던
자두나무 가지들도
겨울잠을 털고
시위를 당겨
봄을 쏘고 있다.

-<봄>중에서

봄날 아침의 정경이 한 폭의 단아한 풍경화처럼 그려져 정감을 자극한다.
'겨울잠을 털고/ 시위를 당겨/ 봄을 쏘고 있다.'는 은유적 시구가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같은 응결된 시상은 시, <가을 달>에서 더욱 원숙한 시어로 읊어지고 있다.

바람이
알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늦가을.

산은
수줍어
얼굴 붉히고

(2연 생략)

울가
대소리도
사각 사각
서릿발을 빗는데

창가 고목에 걸린
차가운 달을 품으니

그대 그리워
눈물 어리네

-<가을 달> 중에서

늦가을 풍경을 서정적 시어로 아주 정감있게 재현해서 그윽한 정취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 단시형의 시편으로 먼 이국 땅에서 절절한 향수를 읊고 있는 시인의 비감을 절감하게 된다.
객창에서의 애수를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정 시인은 <무지개>에서는 다시 연가를 멋드러지게 열창하고 있다. ' 사랑의 심장을 겨누는/ 화살촉/ 팽팽이 당겨져/ 활시위로 떠있는 무지개.' 참으로 생동한 정취를 맛보게 하는 시구가 우리 가슴을 앞도하는 듯하다.
이번 시집의 표제시, <금강산>을 접하면 정 시인의 뜨거운 민족애와 향토애를 흡족하게 공감할 것이다. 반세기 만에 숙원을 풀었다는 시인의 감격적 목소리는 <금강산>을 비롯, <구룡폭포>, <해금강>에서 큰 울림으로 읊어지고 있다.

한얼 백성들의
우람한 가슴에
빛으로 솟아 영롱하구나

하룻밤 자고나면
동해 운무로
머리를 감고
칠보단장한
새 신부가 되어
칠천만 연인들을
설레게 하나니

(3연 생략)

봄빛, 여름 볕
가을 단풍
겨울 눈발 속에서도
억년 세월을 초연히
한민족의 기상으로

솟아 오르는

백두대간의 젖꼭지
금강산.
-<금강산>중에서

벅찬 감격으로 <금강산> 찬가를 노래하고 있는 시인의 열창은 우리 7천만 민족의 공감대를 크게 울리게 할 것 이다. 이 시편에서 ' 만물상'과 '구룡폭포'의 절경을 유감없이 읊어내어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정용진 시인의 조국에대한 넘치는 사랑은 여러 시편에서 드러나고 그의 시 정신에 깊숙히 저류하고 있는 주님을 향한 기원이 한층 돋보인다.
특히 제3장 <빈 의자>속에 포함된 시편 중에서 <기도하는 이 아침에>를 비롯한 <6월의 기도>, <빈 의자>, <우물>등에서 간절한 기도문을 서정적 음향으로 찡하게 읊어내고 있어 감동적이다.
이들 시편에서 정 시인의 돈독한 신앙의 경지를 쉽사리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땀 흘리는 수고도
별로 못하면서
졸부가 되겠다고
이웃들을 괴롭히고
맑은 물을 흐리며 덤비다가
또 한해를 맞이 하는
마루터기에 섰습니다.

(중략)

믿음이 약한자
소망이 없는자
사랑이 고갈된 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아버지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이 아침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이 아침 중에서>

진지한 참회의 목소리를 담은 <기도하는 이 아침에>는 장시로 엮어져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기도문으로 읊어졌다. 특히 정시인의 이를 데 없는 경건한 신앙의 메세지를 담아낸 <빈 의자>를 숙연한 목소리로 듣게 된다.

주님
의자 하나를
말끔히 닦아
대문 앞에 놓아 두었습니다.

이 죄인의 집을
찾아 오셔서
문을 두드리실 때
탐욕에가려
보지 못하고
마음이 닫혀
듣지 못하여
속히
문을 열어드리지 못 하더라도
용서하시고
잠시 앉아
기다려 주십시오
곧 돌아 오겠습니다.
-<빈 의자>중에서

겸허한 몸짓으로 구원을 갈망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너무도 진지하게 쏟아져 우리 가슴을 크게 흔든다. '믿음', '소망', '사랑'의 그리스도 복음이 고스란히 남겨진 감동의 시 편으로 받아진다.
이 시집의 4장 <통일의 꿈>속에는 <남과 북>을 필두로 <통일의 꿈>, <통일의 노래>등이 각별히 시선을 끌게 한다. '55년 분단의 세월을' 되돌아 보면서 통한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내고 통일을 갈망 한다. 시 <남과 북>에서 '사랑으로 화해하자'고 소리 높여 노래하고 있다.
다시 정시인은 소리를 가다듬어 <통일의 꿈>을 숙연한 음향으로 읊어 우리들 가슴을 찡하게 울려주고 있지 않은가.

통일은 꿈입니다.
희망입니다.
만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꿈을 꿈니다.

피난길
산 모롱이를 돌다
엄마를 놓침 꿈.
남포동 거리를 헤매다
누나를 만난 꿈을 꿈니다.

통일은 한恨입니다.
남과 북이
꿈속에서 만나

서로 부등켜 안고 울다가
깨어서도
진짜로 부등켜 안고 우는
감격의 꿈입니다.
-<통일의 꿈>중에서

이렇듯 정 시인은 '통일은 한입니다.'고 열창하면서 통일의 밝은 내일을 장시로 엮어내고 있다.

이 시집 말미에 첨부된 산문 <금강산의 시학詩學>과 <금강산 기행>도 정용진 시인의 모국에 대한 열애와 통일의 열망에서 쓰여진 글들이기에 소중하게 받아진다.

이제까지 정용진의 제4시집 <금강산>의 문제시와 가작시들을 두루 음미하면서 그 시향詩香에 흠뻑 젖어 들었다.
먼 이국 땅 미주에 힘겹게 둥지를 틀고 고달픈 삶을 3ㅇ여년 이어가면서 집요하게 모국어로 시와 수필을 쓰고있는 정용진 시인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농부와 같은 순박한 시심으로 광야의 시세계에 쟁기꾼의 삶을 통해서 값지게 출산한 시집 <금강산>에 우리 국내외의 독자와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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