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에서 5년째 홀로사는 정용주 시인

2007.09.17 22:24

정용진 조회 수:529 추천: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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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서 5년째 홀로사는 정용주 시인


"속세를 떠났다고요? 그런 거창한 생각은 안했어요. 그냥 피곤하고 지쳤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바쁘게 산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한번 뿐인 내 인생 그냥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인적 없는 깊은 산 속에서 5년 동안 홀로 생활해오고 있는 시인이 있다. 2003년 7월 라면박스 20개 분량의 서적과 음악CD 600장, 쌀 한 포대, 된장과 고추장을 짊어지고 치악산 국립공원 내 산골짜기로 들어간 정용주(45) 시인.

그가 사는 곳은 금대계곡 부근에 위치한 옛 화전민 마을이다. 버려진 집들 가운데 하나가 시인의 보금자리다. 산길로만 꼬박 2㎞를 올라가야 하는 곳. 5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염소를 치며 살아가는 '염소 할아버지' 부부가 시인의 유일한 이웃이다.

"한번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두어 달 가량은 굶어 죽지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살다 보니 요령도 붙고 재미도 생겼습니다. 의외로 잘 맞는다고 할까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시인의 생활신조는 '게으름'.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일하고 싶으면 조금 하며 제멋대로 자연 속에서 뒹구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혼자서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냈다.

여름철에는 텃밭에 고추, 상추, 무 등을 심는다. 그렇다고 생활신조를 깨트릴 정도로 정성을 쏟지는 않는다. "대충대충" 씨를 뿌려놓고 올라오는 대로 먹을 뿐이다.

낮이나 밤이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혼자 있으니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산으로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음악CD 중에는 인디언 음악과 조용필 노래가 많다. 날이 더우면 계곡 가에 가서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근다. 잠이 오면 낮잠을 잔다.

시인은 양봉기술도 배웠다. 그러나 매년 20통 정도의 토종벌꿀을 거두는 시인은 친구들이 고추장이나 쌀을 주면 한 통씩 줄 뿐 시장에 내다 팔지는 않는다. 시인의 한 달 생활 유지 비용은 5-10만원.

올해에는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올해 장마가 유난히 길어 벌통 속에 사는 벌들이 무더기로 죽은 것. 20개 벌통 가운데 5개 안에 살고 있던 벌들이 모두 죽었다. "비가 이렇게 오면 설탕물을 타서 주고 해야 하는데 게을러서…."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시인은 "나무하다 삭정이에 눈을 찔린 것 외에 5년 동안 몸이 아픈 적은 거의 없다"며 "물 좋고 공기 좋으니까 아플 일이 안 생기는 것 같다"고 대꾸했다.

"심심하지 않냐고요?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가요. 게다가 방문을 열면 다 산이죠. 여름에는 푸른잎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앞으로 어떤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변화의 기회가 온다면 받아들일 용의도 있지만 미리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어떤 결정 속에 속박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시인은 최근 산속에서의 삶을 담은 산문집도 한 권 냈다. 제목은 '나는 숲 속의 게으름뱅이'(김영사). 조만간 집필을 끝낸 시집도 선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속세'를 떠난 까닭이 무엇이냐고.

"누군들 우여곡절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과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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