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국(優國)의 시학(詩學)

2010.04.18 08:07

정용진 조회 수:988 추천:177

우국(憂國)의 시학(詩學)
                                 정용진

우리 민족의 탁월한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국민들을 향하여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 고 역설하였다.
조국은 민족을 담는 집이요, 민족을 감싸주는 울타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인도, 우리나라도 조국을 타 민족에 빼앗기고 숱한 세월 갖은 학대와 멸시를 받은 민족이 아닌가.

조국강산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을
언제나 잊지 말고 노래 부르자
높은 산 맑은 물이 우리 복지다
어느 곳 가서든지 노래 부르자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에 더운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   <노산 이은상>

가고파, 성불사의 깊은 밤, 오륙도, 등 주옥같은 시조들을 남긴 노산 이은상 시조 시인은 근대 한국 시조사의 한 획을 긋는 대가이다.
초정 김상옥, 백수 정완영, 가람 이병기, 조운등도 많은 명 시조들을 남겼다.
      우리 나라 역대 장군들의 진중시(陣中詩)  과거 우리 나라 장군들 중에 전쟁 상황을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은 기록상 많지 않으나, '진중시(陣中詩)'는 제법 상당수 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조선시대까지의 역대 유명한 장군들의 '진중시' 작품을 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진중시'란 전쟁 중에 쓴 시(詩)는 물론이요, 평화로울 때도 진중(陳中), 즉 병영(兵營) 안에서 국방의 의무를다하며 유사시(有事時)에 대비해 무인(武人)으로서의 소회(所懷)를 담아 표현한 시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用語)이다.
1.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의 오언고시)        ‘여수장우중문시  (與隋將于仲文詩)’策究天文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妙算窮地理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戰勝功旣高  전쟁에 이겨서 그 공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神                                 ※ 출전(出典) : 三國史記 권44 列傳         연대(年代) : 고구려 26대 영양왕 23년(A.D. 612)
주제(主題) :적장에 대한 야유와 회군(回軍) 유도(誘導)☞  특기사항 : 억양, 대구, 대조, 과장, 반어, 도치의 다양한 수사 기교와 적장(敵將)에 대한 야유 내지 조롱을 통해 장군의 늠름한 기개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고시(古詩) 명작(名作)이다. 2. 최영(崔瑩 : 1316-1388) 장군 시조(時調)  ‘호기가(豪氣歌)’녹이상제(綠駬霜蹄) 살지게 먹여 시내물의 씻겨 타고용천설악(龍泉雪鍔)을 들게 갈아 두러 메고장부(丈夫)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세워 볼가 하노라.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가람本 442 연대(年代) : 미상(未詳)이나 고려 말로 추정주제(主題) : 준마(駿馬)와 보검(寶劍)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용장(勇將)으로서의 충절(忠節) 포부                     (기개와 절개)     ☞ 단점 : 관념적 소재의 나열, 주제(主題)의 직설적 표현,               평이하고 단조로운 표현. 3. 이지란(李之蘭 : 1331-1402 ; 퉁두란) 장군  의 시조 ‘개국(開國) 승리가(勝利歌)’楚山(초산) 우난 虎(호)와 폐택(沛澤)에 잠긴 용(龍)이
吐雲生風(토운생풍)하여 幾歲(기세)도 壯(장)할시고秦(진)나라 외로온 사슴은 갈곳 몰나 하노라                                       ※ 출전(出典) : 甁窩歌曲集 513 연대(年代) :  여말(麗末) 선초(鮮初) 무렵주제(主題) : 고려말 개국파(開國派)의 승리 기세(氣勢)와 망국지경을 당하게 된  고려 왕실(王室)에 대한 일말(一抹)의 회억(懷憶)
☞ 특기사항 : 진(秦)의 붕괴와 새로운 천하통일을 지향하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고사(故事)에서 제재(題材)를 빌어 와 고려말(高麗末)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4. 김종서(金宗瑞 : 1390-1453) 장군 시조  호기가(豪氣歌)’ 2수 1)  朔風(삭풍)은 나모긋태 불고 明月(명월)은 눈속의 찬듸     萬里邊城(만리변성)에 一長劒(일장검) 집고셔셔     긴 파람 큰 한소ㄹㅢ에 거칠 꺼시 업세라.                               ※ 출전(出典) : 海東歌謠 周氏本 21 연대(年代) : 세종(世宗) 연간(年間) 육진(六鎭) 개척시절주제(主題) : 무인(武人)다운 늠름한 기개 ☞ 특기사항 :  삭풍이 나무 끝에서 분다는 착상(着想)의 비범함이 놀라울 지경이다.  한기(寒氣) 넘치는 설경(雪景)과 명월(明月)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하여 무인(武人)답지 않은 멋진 도입(導入) 솜씨를 보여 주고 있다. 2)  長白山(장백산)에 旗(기)를 곳고 豆滿江(두만강)에 말을 싯겨     서근 져 션ㅂㅢ야 우리 아니 사나희냐    엇덧타 麟閣畵像(인각화상)을 누고 몬져 하리오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14 연대(年代) : 세종(世宗) 연간(年間) 육진(六鎭) 개척시절      주제(主題) : 무인(武人)으로서의 당당한 자부심(自負心)  과 일부 비겁한 文臣(문신)들에 대한 멸시 5. 남이(南怡 : 1441-1468) 장군의 한시(漢詩)   ‘호기가(豪氣歌)’와 시조 2수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서 다 말라버렸네.男兒二十未平國  사나이 스무살 나이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後世誰稱大丈夫   후세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랴  연대(年代) : 조선 세조(世祖) 13년(1467) ‘이시애(李施愛)의 난(亂)’과 건주위(建州衛) 야인(野人) 들을 평정 후 돌아올 때 지음.
주제(主題) : 무인(武人)의 넘치는 기개☞ 특기사항 : 이 한시(漢詩)의 3, 4행 내용으로 인해 역모죄(逆謀罪)의 누명을 쓰고 처형을 당함.
1)  烏騅馬(오추마) 우는 곳에 七尺長劒(칠척장검) 빗꼇는듸   百二山河(백이산하)는 뉘 따히 되닷말고   어즙어 八千弟子(팔천제자)를 언의 낫츠로 볼연요                          ※ 출전(出典) : 海東歌謠 一石本 190 연대(年代) : 조선 세조(世祖)~예종(睿宗) 재위 연간 주제(主題) : 항우(項羽)의 비극적 최후 동정(同情). ※ 내면적 주제 :   기력(氣力)만을 믿다가 비참한 최후를 초래한 항우와 같은 인물 대신에 지용(智勇을 겸비한 장수가 될 것을 다짐함.
2)  長劒(장검)을 빠혀들고 白頭山(백두산)에 올라보니     大明天地(대명천지)에 腥塵(성진)이 잠겨세라     언제나 南北風塵(남북풍진)를 헤쳐볼고 하노라.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106 연대(年代) : 조선 세조(世祖)~예종(睿宗) 재위 연간주제(主題) :  남만 북호(南蠻北胡)가 일으키는 병란(兵亂)을 평정(平定)하여 나라의 안녕(安寧)을 이루어 놓으리라. ☞ 특기사항 : 청년장군(靑年將軍)으로서의 호기(豪氣)의 큰 포부를 노래하였다.

6. 의병장(義兵將) 고경명(高敬命 : 1533-1592)의 시조(時調)
靑蛇劒(청사검) 두러메고 白鹿(백록)을 디쥴타고扶桑(부상) 디는 해에 洞天(동천)으로 도라드니仙宮(선궁)에 鐘磬(종경) 맑은 소래 구름밧게 들니더라                                   ※ 출전(出典) : 花源樂譜 197  연대(年代) :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주제(主題) : 신선세계에 대한 갈망과 동경(憧憬) → 전쟁              끝난 후에는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선경 (仙境)에 가서 살고 싶다. ☞ 특기사항 :  고경명 장군은 금산(錦山)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戰死)한 의병대장이지만, 평소 유생(儒生) 출신으로서 신선세계를 동경하는 도교적인 사상을 지녔던 인물임을 이 시조를 통해 알 수 있다.  초장 첫 구(句)의 ‘청사검 두러메고’에서는 호방한 기개를 노래하는 듯하다가,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난 청순한 이미지를 지닌‘백록(白鹿)’이라는 시어(詩語)를 사용하여, 자칫 강직한 느낌을 줄 뻔했던 초장(初章)을 원만하게 순화시켜, 조화와 균형미를유지하고 있다. 내용(사상)과 형식(표현)이 잘 조화된 작품이다.    7. 이순신(李舜臣 : 1545-1598) 장군의 시조  時調) ‘한산도야가(閑山島夜歌)’閑山(한산)셤 달 발근 밤의 戍樓(수루)에 혼자 안자큰 칼 녀ㅍㅢ 차고 기픈 시람 하난 적의
아듸셔 一聲胡茄(일성호가)난 남의 애를 긋나니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111 연대(年代) : 조선 宣祖(선조)  28년 임진왜란 중주제(主題) : 수군(水軍) 지휘관으로서 전투 전야 (前夜)            에 느끼는 우국충정(憂國衷情)과 비장(悲壯)한 고독.☞《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 수록 한역시(漢譯詩)          한산도야가  (閑山島夜歌) 閑山島 明月夜 上戍樓 撫大刀 深愁時 何處一聲 羌笛更添愁☞ 특기사항 : 태풍전야(颱風前夜)의 적막(寂寞)처럼 큰 전투를 앞둔 전야(前夜)에 긴장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수루(戍樓)에올라 승리를 위한 작전(作戰)을 구상하며,  우국충정 때문에 근심에 잠겨 있는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가닥 구슬픈 피리소리때문에 애를 태우는 장군의 인간적 면모(面貌), 문인(文人) 못지않은 빼어난 감성(感性)이 약여(躍如)하게 드러나는 작품.8.  정충신(鄭忠信 : 1576-1636) 장군의 시

空山(공산)이 寂寞(적막)한듸 슬피 우난 져 杜鵑(두견)아  
國興亡(촉국흥망)이 어제 오날 아니여날至今(지금)히 피나게 우러 남의 애를 긋나니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392 연대(年代) : 조선 인조(仁祖) 재위 연간주제(主題) : 인걸(人傑)을 몰라보는 세태 한탄 ☞ 특기사항 : 한밤중에 슬피 우는 두견(杜鵑)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작자 자신의 애절한 심정을 두견(杜鵑)에 감정이입을 하여, 인재(人材) 없는 사회를 통탄하였음. 9. 임경업(林慶業 : 1594-1646) 장군의 시조拔山力(발산력) 盖世氣(개세기)난 楚覇王(초패왕)이 버거이요秋霜節(추상절) 烈日忠(열일충)은 伍子胥(오자서)의 우히로다千古山(천고산) 凜凜丈夫(늠름장부)난 壽亭侯(수정후)인가 하노라                          ※ 출전(出典) : 歌曲源流 東洋文庫本 99연대(年代) : 조선 인조(仁祖) 재위 연간
주제(主題) : 촉한(蜀漢)의 장군 관운장(關雲長) 숭앙崇仰) 및 추모(追募)     ※내면적 주제 :

한(漢)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헌제(獻帝)로부터 수정후(壽亭侯) 작위(爵位)를 받았으며, 평생 유비(劉備 : 160-223)에 대한 충의(忠義)가 한결같았던 용장(勇將) 관우(關羽 :? - 219)를 본받아서 무인(武人)으로서  자기완성의 길을 가려는 마음다짐과 함께, 관우(關羽)와 같은 훌륭한 명장(名將)이 우리 나라에도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심정을 술회함. ☞ 특기사항 :  내용은 무부(武夫)답게 호방(豪放)하여 좋으나,  한자어(漢字語) 남용으로 품격을 다소 떨어트린 감(感)이 있다.  10. 구인후(具仁垕 : 1578-1658) 장군의 시조御前(어전)에 失言(실언)하고 特命(특명)로 내치시이니몸이 갈듸 업셔 西湖(서호)를 차자가니밤中(중)만 닷드난 소래에 戀君誠(연군성)이 새로왜라                                 ※ 출전(出典) : 樂府 서울大本 92연대(年代) : 조선 인조(仁祖)~효종(孝宗) 재위 연간주제(主題) : 자연(自然)에 귀의하려 하면서도 억제할 수 없이 솟구치는 연군지정(戀君之情)☞ 특기사항 : 구인후(具仁厚) 장군은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2등공신으로, 무인답게 직정적인 성격을 지녀서직언(直言)을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 시조에서는 신하된 도리로 스스로의 직언(直言)을 실언(失言)을 한 것으로 표현하고있다. 이런 표현이 오늘의 관점에서는 다소 이채(異彩)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철저한 유교적(儒敎的) 휴머니즘의 작품이라 할 수
겠다.11. 이완(李浣 1602-1674) 장군의 시조 君山(군산)을 削平(삭평)턴들 洞庭湖(동정호)ㅣ 너를랏다桂樹(계수)랄 버히던들 달이 더옥 밝을 거슬뜻 두고 이로지 못하고 늙기 셜워 하노라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169연대(年代) : 조선 효종(孝宗) 승하 후 현종(顯宗) 재위연간
주제(主題) : 북벌정책(北伐政策) 포기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늙은 장수의 안타까운 심정 ☞ 특기사항 :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국치(國恥)를 씻고자, 어영대장(御營大將) 및 훈련대장(訓練大將)을 맡아 효종(孝宗) 임금의 북벌계획을 최일선(最一線)에서 수행하던 인물이 이완 장군이었다. 바로 이 시조의 초장(初章)과 중장(中章)은 효종의 북벌책(北伐策)이 옳음을 비유한 표현이고, 종장(終章)은 북벌책(北伐策)이 효종 승하(昇遐)로 인해 물거품이 된 데 대한 애석(哀惜)함을 표현한 것이다.12. 유혁연(柳赫然 : 1616-1680) 장군의 시조닷난 말 셔셔 늙고 드난 칼 본의꼇다無情(무정)한 歲月(세월)은 白髮(백발)을 재촉하니聖主(성주)의 累世鴻恩(누세홍은)을 못갑흘가 하노라                                        ※ 출전(出典) : 槿花樂府 122     연대(年代) : 조선 인조(仁祖)~숙종(肅宗) 재위 연간주제(主題) : 무인으로서 이렇다 할 공(功)을 세우지도 못한 채 백발(白髮)이 되어 가는 것을 한탄.  ☞ 특기사항 : 병 자호란 때 안주(安州)에서 전사한 부친 유효걸(柳孝傑)을 잃은 한을 지닌 유혁연 장군은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와 어영대장(御營大將), 훈련대장 등을 역임하였지만, 1680년(숙종 6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에연좌되어 제주도 등지에 유배(流配)되었다가 사사(賜死)를 당한 남인(南人) 출신으로서, 이 시조는 유배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추측되고 있다.13. 이택(李澤 : 1651-1719) 장군의 시조감장새 쟉다 하고 大鵬(대붕)아 웃지 마라九萬里長天(구만리장천)을 너도 날고 저도 난다.두어라 一般飛鳥(일반비조)ㅣ니 네오 긔오 다르랴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446
연대(年代) : 조선 숙종(肅宗) 재위 시절 주제(主題) : 권위주의와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옹졸 인간들에 대한 교훈(敎訓)
☞ 특기사항 : 평 안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된 지 석 달 만에 대간(臺諫)과 사이가 나빠 사퇴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었던장군답게, 사람은 모두 평등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권세나 지위의 고하(高下)에 의해 차별 내지 구분하려는 당시 세태(世態)를새에게 의탁(비유)하여 풍자하였다.
14. 주의식(朱義植 : 숙종 시절) 장군의 시조 2수
1)  쥬려 죽으려하고 首陽山(수양산)에 들엇거니    현마 고사리를 먹으려 캐야시랴    物性(물성)이 구분 줄 애달아 펴보려 캠이라                                 ※ 출전(出典) : 甁窩歌曲集 385연대(年代) : 조선 숙종재위 시절 주제(主題) : 세상(世上)의 지나친 왜곡(歪曲) 굴절(屈節             =屈折) 현상을 풍자(諷刺)  ☞ 특기사항 : 사육신(死六臣)의 대표격인 성삼문(成三問) 선생의 시조 절의가(節義歌)에 대한 화답(和答) 형식의 시조이다.  성삼문 선생이 절의가(節義歌)에서 은(殷)나라 백이 숙제(伯夷叔齊) 형제의 주(周)나라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꾸짖은 데 대한일종의 변론(辯論) 형식이나, 내용인즉슨 사실상 반박(反駁)이 아니고 이제(夷齊) 형제의 고사(古事)에 빗대어 은연중세태(世態)의 굴절(屈節=屈折) 현상을 풍유(諷諭)한 것이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훗날 칠원(漆原) 현감(縣監)을 지낸장군답게, 불의와의 타협을 싫어하는 전형적 무골(武骨)의 면모를 보여 주는 글이라 볼 수 있다.  ※ 성삼문 선생의 ‘절의가(節義歌)’首陽山(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恨(한)하노라주려 죽을진들 採薇(채미)도 하난것가아모리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더니                                        ※ 출전(出典) : 甁窩歌曲集 62 2)  말하면 雜類(잡류)라 하고 말 아니면 어리다 하내     貧寒(빈한)을 남이 웃고 富貴(부귀)를 새오난듸
     아마도 이 하날 아레 사롤 일이 어려왜라                             ※ 출전(出典) : 珍本 靑丘永言 224연대(年代) : 조선 숙종 재위 시절 주제(主題) :  세태 인심(世態人心)과 처세(處世)의 어려움 풍자 ☞ 특기사항 : 무인(武人) 특유의 강직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세상 사람들이 나보다 못난 사람을 대하면 업신여기거나 비웃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시기(猜忌)하여 모략을 하는 풍토를 비판하고 있다. 15. 김삼현(金三賢 : 숙종 시절) 장군의 시조공명을 질겨마라 榮辱(영욕)이 半(반)이로다
富貴(부귀)를 貪(탐)치마라 危機(위기)를 밥난니라
우리난 一身(일신)이 閑暇(한가)커니 두려온 일 업세라                                   ※  출전(出典) : 大東風雅 114연대(年代) : 조선 숙종 시절주제(主題) : 부귀공명을 즐겨 탐하다가는 자칫 화(禍)를 입을 수도 있으니, 욕망을 버려라.  ☞ 특기사항 : 주의식(朱義植) 장군의 사위이기도 했던 김 삼현 장군은 바로 윗 시조의 주제(主題) 그대로 큰 욕심없이 청빈(淸貧)하게 무관 생활(武官生活)을 하다가, 결국은 절충장군(折衝將軍) 관직(官職)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은퇴하여,장인(丈人)인 주장군(朱將軍)과 함께 산수지간(山水之間)을 노닐며 시작(詩作)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두 장군이야말로너무나 서로 잘 어울리는 옹서지간(翁壻之間)━━가위(可謂) ‘그 장인에 그 사위’였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

성균관에 가보면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유학을 강론하고 과거를 시행하던 명륜당과 책을 보관하던 존경각 그리고 동쪽에는 동제가 서쪽에는 서제가 있다. 동재는 문관의 기숙사요 서재는 무관의 기숙사였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는 많은 무관들이 조국을 지켰는데 그들도 학문을 깊이 익혀 무과에 급제하고 자신의 우구충정을 시조로 남겼다.
김상헌의 시조는 병자호란이후 홍익한 오달제 윤집 삼학사와 함께 청태종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인질로 잡혀가면서 남긴 시조다. 당시의 국가 상황이 여실이 잘 기록되어 있다.

무궁화(無窮花)

연보라 빛
애틋한 품속에

백의민족(白衣民族)의
맑은 혼을
가득히 숨겨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닭도록“

살아 숨쉬는
경천애인(敬天愛人)
홍익인간(弘益人間)
높고 깊은 조극애.

하늘 향한
곧은 줄기
푸르른 잎
한얼의 기상일레.

영원무궁한 선열들의
고결한 숨결속에
아름다운 후예들의
뜨거운 사랑아!

연보라 빛
그윽한 가슴 가득
타오르는
민족의 혼 불
우리라 꽃
무궁화.   <수봉 정용진>

조국은 민족의 영원한 텃밭이다. 조국을 잃은 민족의 불행을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다. 이스라엘의 피맺힌 방황, 인도의 200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 생활, 우리 민족의 나라를 빼앗긴 36년간의 고난의 삶. 이 얼마나 슬프고 한 맺힌 삶의 역정이었는가. 우리는 너무나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는 시인으로서 조국을 사랑하는 시인들의 우국시 또는 애국시를 통하여 잠자는 민족혼을 일깨워 보기 위하여 이 글을 쓰기로 하였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
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살아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
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뜩밖
의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
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
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음
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시인은 불자로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중 한분으로 독립선언 말미에 ‘공약삼장‘첨가한 분으로 유명하다.
이 시는 절대자를 향한 고백이라는 해석도 있고, 이 시에서 님은 조국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아니하다. 여하간 우리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였던 애국자의 한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인은 말한다.
조국이 무엇인가 민족이 무엇인가. 애국이 무엇인가. 시인은 말한다.
민족이 힘을 잃어 통 배를 내어주고 배 속을 빌어먹으면서 만주 벌판에서 중원 들판에서 굶주리고 헐벗을 때 그 시대의 지성의 대변자인 시인들의 처신한 모습들이 실로 다양하다.
어떤 시인은 학병으로 가야 대 일본 제국의 황성시민 답다고 역설하고, 또 어떤 시인은 자연과 풍광만 솔솔 읊으면서 기회를 엿보는 들쥐처럼 처신하고, 소수의 시인들은 “재능은 고독 속에서 연마되고 인격은 위난 속에서 형성 된다고 목숨을 내 걸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이 뼈아픈 물음과 절규 앞에 나는 밤잠을 설쳤다. 적어도 우리 한민족이라면 가슴깊이 새겨둘 민족의 대 서사시임이 분명하다. 역사 앞에 당당히 서는 인격은 영원히 외롭지 아니하고 만인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날이 오면   - 심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그날이 오면 오오 그날이 와서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은 절규한다.
자신의 아픔을 아는 사람만이 남의 아픔을 절감하고 민족의 고뇌를 가슴속 깊이 간직한 사람만이 그 노래가 절절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늘 푸른 나무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상록수를 민족의 표상으로 기린 심훈 그는 그날 조국의 관광 그날이 자신의 생존에 오기만 한다면 잘 드는 칼로 자신의 몸 가죽을 도려내어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들의 행렬에 앞장서리라고 절규한다.

직녀에게
              문병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문병란 시인은 조선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친 선구자적 시인이다.
내가 샌디에고에서 아내와 에덴장미 농장을 경영 하면서 많은 조국의 명사들이 나를 찾아 주시고 격려하여 주심을 주님께 감사한다.
온타리오에서 농장을 경영할 때에는 동국대학교 농대학장을 지내신 김종희 박사님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때 내가 정신적 아버님으로 존경하는 이당 안병욱 교수님내외를 내 농장에 모실 수 있었음을 인생의 행복으로 생각한다.
샌디에고로 옮겨와서 장미농장을 경영하면서는 1999년 10월15일 내가 경영하는 에덴장미농장에서 한국 시인의 대가 고은(高銀)시인님을 형님으로 모시는 장미원의 결의형제 맹약을 하였다.
나는 고은 시인의 형제 결의를 제안 받고 가슴이 떨렸다. 나의 친구 시인  문인귀 형이 내 집으로 고은 시인을 모시고 온다하여 삼국지를 펴놓고 유비 관우 장비의 삼형제 도원의 결의를 생각하고 열어보니 소를 잡아 피를 나누며 형제의 결의를 하였다고 전한다. 하여 나는 육간대청에 돗자리를 펴고 형님을 상좌에 모시고 ‘천지신명이시여 이제 형 고은시인과 아우 정용진 시인이 형제의 결의와 맹약을 맺나니 이 약속이 평생을 지나도록 변치 않게 하옵소서. 한 후 백세주를 나누며 형제의 결의를 맺은 것을 내 인생의 천복(天福)으로 생각한다.
그이 후 내 농장에는 박화목 성춘복 문병란 황석영 고원 황갑주 이세방 이승하 김종회 등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찾아와 대화를 나누며 기쁨을 누린 것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련다.
4월의 노래
                    정용진

우리는
생명의 물이 오른
푸른 눈으로
4월의 거리를 보았습니다.

부활을 예언하는
젊음의 합창

하늘이
멀리서부터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거리에 늘어선
가로수들이
나붓기는 손길을
보았습니다.

승리를 다짐하는
젊음의 합창

더러는
두려워 떨고
더러는
분노로 치달으며
무덤을 열고
거리에 넘쳤습니다.

마른 가지에
꽃망울이
돋아오르는
봄언덕에

죄스러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뛰는 심장에
총을 겨누는
검푸른 제복을 보았습니다.

민족을 세우느라
삶을 사른
조국 강산에
다시 사월의 노래가
들여오고 있습니다.

4.19 학생 혁명은 세계의 유례가 드문 학생혁명이다. 그들의 염원은 순수 하였기에  모든 결과가 성공적으로 완성 되었다.
그들이 피는 순수하였고, 그들의 염원은 확고하였고 ,그들의 부르짓음은 강열, 하였다. 목숨을 걸고 총 뿌리 앞에 당당히 나서는 그 힘과 정열,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헛소리를 치던 권력의 일가는 하루아침에 몰락하였고 마산의 ‘김주열‘ 한 젊은이의 죽음이 횃불이 되어 이 강산, 이 겨레의 영원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 이들의 거룩한 죽음은 과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우리 민족과 역사 앞에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마침내 프랭카드를 들고 제자들의 죽엄을 아파하던 여러 대학교수들의 거리 행진이 4.19혁명성공의 큰 힘이되었고, 오늘의 우리 한국이 이렇게 세계 인류들의 찬사를 받는 믿 거름이 된 것이다. 이유 없는 위대한 결과는 역사 앞에 결코 없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이 조각나 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 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 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아이를 밴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은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번 죽고 한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 백번을 죽고도 몇 백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를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시인의 사명은 민중에 가슴속에 숨어 잠자고 있는 민족혼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고지를 손에 들고 시인이 그 앞에 섰을 때에는 가슴이 떨리고 흥분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의 만행으로 죄 없는 빛고을 광주의 양민들이 수없이 죽어 갔을 때 김준태 시인은 이렇게 피를 쏟아내듯 시를 토해냈고 세계의 언론들은 대서특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시란 직관의 눈으로 바라다본 사물의 세계를 사유의 체로 걸러서 탄생시킨 생명의 언어인 동시에 영혼의 메아리라고 정의 한다.

 김지하(金芝河)

오적(五賊), 김지하(金芝河)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
볼기가 확확 불이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겄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사흗날 백두산 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 살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ㅃㅏㄲ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燈벌@), 국회의원(@獪湰猿), 고급공무원(嘂石業功無洋),
장성(長猩), 장차관(瀇哪差囝)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 질기기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 배안에는 큰 황소 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 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이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 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秘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첫째도둑 나온다 재벌(燈@)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뿅뿅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 봐라 저 재벌(燈@)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 치고 계자 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 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 삼아 밤낮으로 직신 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 쥔 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 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잡고
천(千) 원 공사(工事) 오 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 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 숙수 뺨치것다.
또 한 놈이 나온다
국회의원(@獪湰猿)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응승 거리며 나온다
털 투성이 몸둥이에 혁명 공약 휘휘 감고
혁명 공약 모자 쓰고 혁명 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 일성, 쭉 째진 배암 혓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이농(離農)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社會) 정화(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 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염사(兵不厭邪), 치자즉(治者卽) 도자(盜者)요 공약즉(公約卽) 공약(空約)이니
우매(愚忨) 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골프 좀 쳐야겄다.
셋째 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嘂石業 功無洋)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 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낯짝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헤끗헤끗, 피둥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엇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 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없다더냐.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에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갖다 제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 패서 영창에 집어넣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러다가 제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어수(雲雨魚水) 공방전(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新出鬼沒).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瀇哪差 囝)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나와
추접 무비(無比) 눈꼽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 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 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 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5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것다.
이리 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제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5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 하늘에 날 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여져 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 봐라
울뚝불뚝 돼지 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 사돈 네 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 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발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때마다 털렁털렁
열 십 자 팔 벌리고 멧돌같이 죄충우돌, 사자같이 우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 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업어 메치고 뒤집어 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 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 강변 버들같이 휘휘 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 방망이, 세모 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 칼, 작은 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이놈
네놈이 5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5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년, 포주, 깡패, 쭉쟁이 다 합쳐서
풍속사범 5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5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 5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5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밥 못먹어 돈 벌라고 서울 왔오.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넨다.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것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5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말 듣고 옳다 꾸나 대답한다.
5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燈@)과 국회의원(@獪湰猿),
고급공무원(嘂石業功無洋), 장성(長猩), 장차관(瀇哪差 囝)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 새끼야 그 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 좋아 제 무릎을 탁 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쳐버렸던지 무릎 뼈가 파싹 깨져버렸것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 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것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 듯이 부릅뜨고
부릉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서라
안비키면 5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5적(五賊) 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홀랑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 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5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갖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렷다.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둘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 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가득
몇 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 백만원짜리 외국(外國) 개
천만원짜리 수석월비석(瘦石月肥石), 천만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 원 짜리 붕어 잉어, 억 원 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 두고 경제학박사 회계 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영학박사 집사 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 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 속에 에어컨 넣고
새들 행여 추울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 속에 냉장고 넣고
대리석 양옥(洋屋) 위에 조선기와 살짝 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
선자추녀 쇠로n치고 굽도리 삿슈 박고 내외 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직터서 복판에 메인 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 얹고
기와 위에 이층 올려 이층 위에 옥상 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 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漈 委 風)당당
집 밑에다 연못 파고 연못 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 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 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 그린 봉장, 용 그린 용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촛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 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 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첩인물(山水花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이태리화기, 호피 담뇨 씨운테레비, 화류 문갑 속의 쏘니 녹음기, 대모 책상 위의 밋첼 카메라, 산 호책상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 켠 샨들리에, 피마주 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 직접 직사곡사 천장 바닥 벽 조명이 휘황 캄캄 호화 율율.
여편네들 치장 보니 청옥 머리핀, 백옥 구두 장식,
황금 부로취, 백금 이빨, 밀화 귓구멍 마게, 호박 밑구멍 마게, 산호 똥구멍 마게,
루비 배꼽 마게, 금파 단추, 진주 귀걸이, 야광주 코걸이, 자수정 목걸이, 싸파이어 팔찌
에메랄드 발찌, 다이야몬드 허리띠, 터키석(石) 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 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 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발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 안 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워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수란탕, 청포우무, 한천묵,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빼주, 보드카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 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이리 속으로 자탄 망조하는 터에
한 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맛보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 두잔 헐레벌떡 석잔 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처먹었던지 이빨이 확 닳아 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 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의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小信)껏 그 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발옵나이다.
이 말 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노을이라
서산낙일에 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 찾고 조각달 희게 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 흐르는데
어쩔거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 쌌는데 어쩔거나
콩알 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거나 어쩔거나 우리꾀수 어쩔거나
전라도서 굶고 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 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거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 사정 누가 있어 바로잡나
잘 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 가거라.
꾀수는 그 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5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 집 솟을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 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5적(五賊)도 6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 같은 거지 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길이 전해오것다.

김지하 시인은 서슬이 시퍼런 박정권시절 오적이란 시를 발표하고 숱한 고문과 투옥의 고통을 겪었다.
세계의 눈이 그를 주목하였고 이 시를 계재 한 사상계 장준하 사장은 옥고를 치뤘다. 김지하 시인은 후에 독일에서 수여하는 은 곰상을 수상하기도 하면서 담시를 세상에 알렸다.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서언(序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일월과 성신이 천추의 빛을 잃지 아니하고, 눈을 떠서 땅을 굽어보니 강해와 산악이 만고의 형상을 변치 아니하도다. 어느 봄에 꽃이 피지 아니하며, 어느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아니하리요.
우주는 의연히 백대(百代)에 한결같거늘, 사람의 일은 어찌하여 고금이 다르뇨? 지금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 애달프고, 불쌍하고, 탄식하고, 통곡할 만하도다.
전인의 말씀을 듣든지 역사를 보든지 옛적 사람은 양심이 있어 천리(天理)를 순종하여 하느님께 가까웠거늘, 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나올 줄 몰라서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 그름?옳음을 분별치 못하여 악독하기로 유명한 도척(盜甁)이 같은 도적놈은 청천백일에 사마(士馬)를 달려 왕궁 극도에 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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