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향기'/샌디에고 문장교실/정용진 시인 운영(2)

2013.04.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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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행복하려면 세 가지 소중한 선택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첫째는 스승의 선택이다. 어떤 스승을 만나났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습이 달라지고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과거 퇴계나 율곡, 다산의 문하에 훌륭한 선비들이 넘쳐났던 것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둘째로 배우자의 선택이다. 배우자를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행불행이 가늠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직업의 선택이다. 직업의 선택은 나는 물론 내 가정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기에 인생 성패의 바로미터가 된다.
나와 내 아내는 미국에 이민 와서 샌디에고 북부 Fallbrook에서 83년부터 2003년에 이르기 까지 20여년을 장미농장을 경영면서 생업을 유지하였다. 20에이커 농장에 6만주의 장미를 심고 가꾸면서 두 아들을 성장 시켰고 영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장미꽃을 사랑의 선물로 제공하며 시인으로 성장한 것을 나의 행복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구라파 사람들과 미국인들은 발렌타인스의 날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 사랑 할 사람, 사랑 하였던 사람. 에게 장미꽃을 선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옥수수
              
어머님이
방문 가방에 넣어
전해주신
옥수수 씨앗
정이 그리워
울 가에 심었더니

한여름
낯선 하늘 우러르며 자라
간 밤

아기를 낳아
등에 업고
이른 아침
웃으며 서있다.

오. 오. 
나를 등에 업고 계신
어머님.                 -정용진, <옥수수> 전문.

나는 옥수수를 보면 어머님 생각이 난다. 내가 미국에 이민 온 후 어머니의 첫 미국 방문 시에 가방 속에 옥수수 씨앗을 넣어 오셔서 울 가에 심었더니 어느 여름날 옥수수가 등에 아기를 업고 서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의 탄생의 모습을 보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농부의 일기

나는
마음의 밭을 가는
가난한 농부.

이른 봄
잠든 땅을
쟁기로 갈아

꿈의 씨앗을
흙 가슴 깊숙이
묻어 두면

어느새
석양빛으로 영글어
들녘에 가득하다.

나는
인생의 밭을 가는
허름한 농부.

진종일
삶의 밭에서
불의를 가려내듯
잡초를 추리다가

땀 솟은
얼굴을 들어
저문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영원의 기쁨.         -정용진, <농부의 일기> 전문.
                     *권길상 작곡가에 의하여 가곡으로 작곡되었음.

유기농상표
                  
지금은 건강제일 주의시대라
농사를 지어도
유기농이 인기다.

텃밭에다 들깨를 심고
한여름 열심히
물과 거름을 주어 길러
몇 잎 따다가
삼겹살에 싸서 소주한잔 하려했더니
밤이슬이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하늘이 비치도록
전신이 온통 구멍투성이다.

잎 뒤를 살펴보니
그린 애벌레가 천연덕스럽게
흰 그물을 치고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다.

이놈을 범인으로 잡아
흰 접시위에 올려놓고
다그쳤더니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소슬한데
시도 쓸 줄 모르고
할 일도 없고 하여
유기농상표하나 그렸단다.

이놈마저
초고추장에 찍어
안주로 삼켜버리고 말까보다.           -정용진, <유기농 상표> 전문.

훈장(勳章)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석양
황금 양탄자를 밟고
문을 들어서니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진흙 반점을 보고
여보, 얼굴에 
그게 뭐요
아내가 묻는다.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농민의 훈장이외다.    -정용진, <훈장> 전문.

나는 경기도 여주(驪州)에서 태어나 농부의 아들로 자랐다. 여주는 남한강이 관류하여 농산물이 풍부하고 자연이 아름다워 팔경(八景)이 있기도 한 고장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자연을 통하여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서정(抒情)을 가슴 속에 싹 티 운다.
이민 온 후 1975년 한국인 최초로 미주 캘리포니아 주 온타리오에서 전문 한국농장을 개척하였음을 자부심으로 느끼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기른 왜무를 사 먹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를 지도하시고 키워 주시다 지금은 작고하신 전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장 김종희 박사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아내와 내가 땀을 흘리며 개척하다보니 서로 동지요 스승이 되어 대통령이 아닌 아내로부터 성공한 농민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는 어느 훈장보다 자랑스럽고 값지다. 이 땅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였으면 이웃 농부 우 선생이 정용진을 따라 가느니 차라리 아오지 탄광에 가서 노동을 치고 먹고 사는 것이 났다고 하였을 까? 참으로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느라 우리 부부는 무진장으로 애를 썼다.

가을 달

바람이
알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늦가을.

산은
수줍어
얼굴 붉히고

철없이
속살 들어내는
가을 강
그윽한 물결.

고향의 전설처럼
평과주가 익어 가는
외진 산마을.

울 가
대 소리도
사각사각
서릿발을 빚는데

창가 고목에 걸린 
차가운 달을 품으니

그대 그리워
눈물 어리네.  -정용진, <가을 달> 전문.     *평과주-사과주.

그리움은 사랑의 핵심 원료다. 그리움은 사랑을 잉태하고 사랑은 행복을 낳는다. 사랑은 늘 함께 있어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요,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구이요. 하나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인내가 필요하고 희생이 따른다.  

가을 백사장
                  
누가 걸어갔나.
은빛 모래밭
외줄기
기인 발자국.

언제 떠나갔나.
자국마다 고인
애수(哀愁).

가슴을 두드리는
저문 파도소리.     -정용진, <가을 백사장> 전문.

나무.3
          
나는 너를 향해
너는 나를 향해

우리는
이렇게 서서
숲을 이루고
마주보며
팔을 벌려 껴안고
사랑에 빠진다.

너와 나의
깊은 가슴속에는
연륜마다 아롱져
출렁이는
사랑의
그윽한 물결.    -정용진, <나무.3> 전문.

작가가 창작에 임하는 태도는 무사가 손에 칼을 잡는 심정 이상으로 그 자세가 진지하고 정성스러워야 한다. 하기 때문에 자르고 문지르고 쪼고 닦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이 필요하다. 당송(唐宋) 8대가의 한사람인 한퇴지(韓退之)는 사설(師設)에서 배우는 데는 스승이 따로 없다고 성인 무상사(聖人 無常師)라고 일렀다.
이는 마치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다보면 반드시 한사람쯤은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이 있다고 (三人行 必有我師焉)을 일러준 것과 다름없다.

정(情)

기러기 떼 울며
북 쪽 하늘로 멀어져 가고
찬바람
하늘을 빗질해도
별빛은 오히려 빛나는구나.

떠나간 기러기 떼
고향 못 잊어 되돌아오면
동구 밖 풀 섶도
봄으로 피거라.

벅찬 삶의 자락에 가리워
애타던 반달도
구름 틈새로 얼굴 내밀고
강산을 엿보는데

세월이
저만큼 흘렀어도
그리운 옛정
가난을 버려두고
울며 떠난 그 아픔
오늘은 먼데서
귀 밑 머리 희었을라.     -정용진, <정> 전문.   * YTN에서 방영.  


빨래
    
아내가
맑은 물에 헹궈
깨끗이 다려준
옷을 입고
세상 속으로 나간다.

바람이 불고
먼지가 일고
눈비가 오고
요설(饒舌)이 난무하는
스산한 음지陰地)

세심정혼(洗心淨魂)의 마음으로
정결(淨潔해야 할 옷깃에
온갖 때가 달라붙는다.

박꽃 같은 마음으로
문을 나서
구겨진 빨래 감으로
되돌아 오는 일상(日常)

오늘도
하늘에는
아침 이슬로 씻긴
한줄기 구름이 
어머님의 손길로 바래진
옥양목 같이 
희게 걸려있다.  -정용진, <빨래> 전문.


빨래터
                
감자 골에서 흘러온 물이
동구 밖 시내로 흐르는
빨래터에
넓적 돌을 뉘어놓고
아낙들이
빨래를 두들긴다.

자신의 설움을
털어내듯
두들겨 패는 방망이소리
때 묻은 죄밖에 없는 빨래들이
후줄근하게 몸을 푼다.

더러는 기인 줄에
깃발로 걸려 펄럭이고
초록빛
미루나무 그늘 언덕에는
옥양목 필이
신작로처럼 펼쳐진다.   -정용진, <빨래터> 전문. *YTN에서 방영.

손때
            
조상이
대대로 물려준
낡은 장롱문고리를 어루만지니
선조 어른들의 손때 묻은
얼이 끈끈하다.

차가운 쇠고리가
이리도 따뜻할 수가 있을까
은은한 숨소리가 들리고
땀 냄새가 향기롭다.

내가 선조들을 못 뵈웠어도
선조들이 나를 못 보셨어도
대대로 때 묻은 손자국에
고고한 꿈과 한이 서려
녹슨 문고리에
오늘도 살아 숨쉬는
그윽한 전설
해묵은 윤기가 고귀하다
증조모의 냄새가 난다.    -정용진, <손때> 전문.  *YTN에서 방영

우리 주위에 둘러선 자연과 일월성신(日月星辰) 모두가 시제(詩題)가 될 수 있다.
내 옷깃을 스치는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은 지면에 너무 많은 자료를 한꺼번에 넣으려고 욕심을 부리면 창작에 실패 할 우려가 많다. 인류의 스승 공자(孔子)는 그의 언행록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유좌지기(有座之器)의 교훈을 일렀다. 넘치는 것은 조금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이 교훈은 공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제(濟)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아 갔는데 그 젯상에 삐딱하게 생긴 잔이 있어서 사찰에게 그 연유를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이 잔은 생존 시 환공께서 아끼시던 잔으로 그냥 놓으면 조금 삐딱해지나 알맞게 물을 채우면 바로서고, 조금 넘치면 다시 삐딱해 집니다. 하여 이때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이른 말씀이다. 공자께서는 진정한 학자는 학문을 연마할 때에는 항상 각고면려(刻苦勉勵)와 백련천마(百練千磨)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이르시고 심사숙고(深思熟考)의 정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不恥下問)고 가르치시고 배움에 권태를 느끼지 말 것(敎學不倦. 學而不厭. 誨人不倦)을 강조했다.

하루살이

하루를 살아도
천년같이
천년을 살아도
하루같이

하루살이는
바람 자는 포근한 날
떼로 몰려와 합창을 부르며
즐겁게 춤을 춘다.

하루는 한 시간보다 길다
한 시간은 1분보다 길다
1분은 1초보다 길다
천분과 지족을 지키며 살기에는
아름답고 긴 하루

하루살이들은
석양 무렵 처마 끝에 몰려와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축제를 벌인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초월적(超越的) 삶이다.   -정용진, <하루살이> 전문.

하루살이는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그 생명이 하루밖에 못 산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저녁이 되면 초가지붕 처마 밑에 몰려와 춤을 춘다. 마치 삶의 기쁨을 감사해 축제를 벌이는 모습 같이 보인다. 새들도 제 짝과 같이 나무숲을 날라 다니는데 어려서 새총으로 새를 잡아 맛있다고 구어 먹은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 짝 잃은 새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빈 의자
            
주님
의자 하나를
말끔히 닦아
대문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이 죄인의 집을
찾아 오셔서
문을 두드리실 때
탐욕에 가려
보지 못하고
마음이 닫혀
듣지 못하여
속히
문을 열어드리지 못 하더라도
용서하시고
잠시 앉아
기다려주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리라고
다짐하지만
늘 반복하는 어리석음에
영안이 흐리고
육신이 지쳐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빈 의자에
먼지를 털면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 오, 주님.        -정용진, <빈 의자> 전문.

우정의 鐘

태평양의 물보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줄기차게 솟아오르는 이 아침

너와 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산페드로
포트 맥아더로 가자.

삼국통일의
굳은 신념과
호국 발원의
숭고한 얼이
하나로 응혈져
에밀레 에밀레

고향과
너무나 머 언 거리에서
겨레의 음성을 더듬는
우리는 빛나는
코리언의 후예들

반만년의 슬기와
오천만의 정성이여
이백년 번영의 대륙위에
길이길이 울려 퍼지거라.

자유를 위하여
생명도 다하고
신의 영광을 부르며
황무지를 갈고 닦던
청교도들의 뜨거운 열기

그들의
인내와 정열을
오늘도 기억하며
대서양을 향하여
미소짓는 자유의 여신처럼

이제
제3세기
새 역사의 장을 여는
우리의 맹방(盟邦)
아메리카를 위하여
네 겨레의
참 맘을 전하라
우정의 종이여

온 백의민족의 뜻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러러
줄기차게
솟아오르는 이 아침에.   -정용진, <우정의 종> 전문.
                        *미국독립 2백주년 기념축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항상 큰 사랑을 받는 아브라함이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 같이,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와서 미지의 땅을 개척한 102명의 청교도들도 복종함으로 얻을 평안을 버리고 장차 믿음으로 받을 행복을 바라보며 개척한 이 땅에 우리 한민족들도 이민을 와서 뿌리를 내리는 것을 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문학이 나무라면 가지는 소설이요, 잎은 수필이며, 꽃은 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자신의 마음과 가슴 속에 출렁이는 산 언어의 물결이다. 이는 반듯이 용출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활화산 같은 불길이요, 토해내지 아니하면 못 견디는 카타르시스(Katharsis 정화. 배설) 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나의 의견을 남에게 전달하고 또 남의 의견을 청취한다. 이것이 곧 대화(Dialogue)요, 작가에게는 내가 내 자신을 향하여 조용히 물음을 던지는 독백(Monologue)과 침묵으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설한부(雪寒賦)

초겨울 눈송이들이
마른 가지 위로
고기비늘처럼
번쩍이며 내리는데

어린것들이 잠든 동굴
길을 잃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계곡을 가른다.

바람을 앞세우고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산을 내려오는
차가운 달.

창틈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젖어
옛님의 숨결로 떨고 있는
촛불이 애처롭다.

한 세기를 잠재우고
새 시대를 일깨우는
여명(黎明)

지금쯤
어느 곳에서
태반의 아픔을 찢고
또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가.            -정용진, <설한부> 전문.
                       *한국 크리스챤 문학상 대상 수상작(05)


발자국
            
내 걸어온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눈길을 걸어간다.

어느 누구도
걸어간 적이 없는
순백(純白)의 설원(雪原)

나만의 행적을  
뚜렷하게 남기고 싶은 욕망이
티 없이 펼쳐진 눈밭에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자국을 남긴다.

나의 발자국들이
구매계약서에 누른
인장(印章)자국같이
진하게 찍힌다.

그러나
뒤를 돌아다보면
끝없이 쏟아지는 눈발로
자취 없이 사라진
나의 흔적들...

‘내 사랑이
그만하면 네게 족하다‘
주님의 음성이
조용히 나를 꾸짖으신다.   -정용진, <발자국> 전문.

Emerald Lake

하늘은
구만리 장천(長天)

물은
천만 길 취옥(翠玉) 항아리


누구를 찾아
저리 높았는가.

무엇을 찾아
저리 깊었는가.

하늘은
쪽빛 눈망울

호수는
내 누님의 청옥(靑玉) 가락지.    -정용진, <에메랄드 레익> 전문.
                               *에메랄드 호수는 캐나다 록기산맥 중턱에                                  있는 호수이름.

시인은 진실하고, 소설가는 궁리(窮理)하고, 수필가는 솔직해야 한다. 작가가 항상 주의하여야 할 점은 작품 속에 은근히 자기 자랑은 늘어놓으면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시가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 이라면, 소설은 허구(虛構)를 통한 상상력과 사실(寫實)의 통일적 표현으로 인생과 미(美)를 산문체로 나타낸 예술인 반면에 수필은 자연과 사물에 대한 자연스러운 서술이며 진실한 고백이다.

설산가경(雪山佳景)

설경(雪景)이 아름답다기에
산광수색(山光水色)을 보려고
레익타호를 찾았다.
나목(裸木)들은
한기(寒氣)에 떨고 있지만
청솔가지들은 백화(白花)가 만발했구나.

빈 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온 달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산장의 커튼을 열어 제치고
창밖을 바라보니
줄지어 곧게 뻗은 적송(赤松) 가지위에
얼굴에 도톰히 살이 오른 초승달이
애처롭게 앉아 있다.
먼 길을 찾아오는 동안 살이 오른 모양이다.

흰 눈을 밟고 발이 시린 레드우드들은
마주서서 팔을 벌려 껴안고
사랑의 온기를 나누고
하늘이 낮게 내리며 눈발을 모으고 있으니
내일 밤에는
설월(雪月)이 만정(滿庭) 하리라.      -정용진, <설산가경> 전문.

연가.2(戀歌.2)

靜山不言 萬年靑
綠水晝夜 回山去
吾愛戀慕 日日深
今夜夢中 願相逢

고요한 산은 말없이 만년을 푸른데
녹수는 주야로 산허리를 휘감고 흘러가네.
내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날이 깊어만 가나니
오늘 밤 꿈에라도 임을 뵈올 수만 있다면...    -정용진, <연가.2> 전문.


    
이른 아침
새들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
창을 여니

자두나무 가지위에
산새 가족들이
구슬을 꿰인 듯
쪼르르 앉아 있다.

하루 일과 훈시를 듣는가
조용하더니
어미 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어린 새들도 창공에 무지개를 그린다.

활처럼 휘어졌던
자두나무 가지들도
겨울잠을 털고
시위를 당겨
봄을 쏘고 있다.

머 언 산 과녁엔
생명의 빛이 번득인다.
저들은 늦가을
열매로 익어 돌아오리라.   -정용진, <봄> 전문.

창틈으로 스며드는 달빛

지금은 삼경
창이 하도 밝아
잠에서 깨어보니
명주비단자락 같이
고은 달빛이
창틈으로 스며든다.

이는 필시
나를 연모(戀慕)하는
연인의 애틋한 마음이라 싶어
백옥장삼자락에
먹물 듬뿍 찍어
사랑이라 쓰노니

눈물은 말고
그리움 서린 애련의
미소로
미소로...       -정용진, <창틈으로 스며드는 달빛> 전문.

성현 공자는 마음이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가  있는 자는 물을 찾는다(仁者樂山 知者樂水)고 가르쳤다 여행은 떠도는 구름과 같이, 흘러가는 물결과(行雲流水) 같이, 한가하고 여유 있는 심정으로 일상에 찌든 삶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섭렵하는 기분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천하를 주류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나를 잠시 내려놓고 자연과 과거선인들이 남겨놓은 찬란한 문화유산에 심취되는 것이다. 위대한 민족일수록 위대한 선인들의 유산이 많다. 시성 괴테가 알프스 산을 오르면서 웅장하고 아름다움에 감동되어 모자를 벗고 절 을하며 “창조주시여 이렇게 웅장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어찌 말이 없으십니까?” 감탄하였다고 전한다.
나는 세계 여행을 하면서 금강산의 아름다움, 카나다 록키산맥의 웅장함, 스위스 알프스 산의 아름답고 장엄함, 중국 만리장성의 거대함, 미국 네바다주 데스밸리의 광대무변함, 미국과 캐나다 국경의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 미국 그랜드캐년의 절경과,  알라스카의 만년빙하의 웅대한 모습과 그리고 6-7월 아류산열도로부터 베링해협을 거쳐 모천(母川)에서 알을 낳기 위하여 귀소(歸巢)하는 연어 떼들의 기나긴 행렬을 보고 감동을 받고 침묵했다.

<서시>
     한얼의 횃불을 높이 들며
             
        <미주한인 이민백년에 부쳐>  정용진


조국이
가시밭길을 걸으매
님도 개척의 험한 길을 택하시고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선조들이
민족의 한을 가슴에 안고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닻을 내리시니

님들께서
이민자의 설움
이민자의 고통
이민자의 눈물을 뿌리시며
아메리카 신대륙에
뿌리를 내리실 때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
죽을 때까지 대한의 독립“
우리 민족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을
민족의 경전처럼
가슴 깊이깊이
아로새기시고

손 찔려 오렌지를 따시고
사탕수수 밭에서
흘리시던 피와 땀
그 거친 손으로
떨며 바치신 독립자금으로
저희들은 비로소
조국광복을 얻었나니

님들은
민족의 얼 이십니다
민족의 힘 이십니다
민족의 뿌리십니다.

그 기쁨
그 감격
그 영광을
이민 백년을 맞는
오늘
님들께 드리나니
기뻐하옵소서.

우리 모두는
경천애인
홍익인간의 빛나는 후예들...

저희들이 님들의 뜻을 받들어
젊은 대륙 황량한 벌판에
믿음의 영토
지식의 영토
경제의 영토를 넓히며
한민족의 힘을 기르겠습니다.

이제
갈라진 조국을
하나로 모아
통일을 이룩하오리다
축배에 넘치는 잔을
님들께 바치오리다.

우리 모두는
한의 얼
한의 꿈
한의 혈맥
승리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오리다.   -정용진, <서시> 전문.

* 이 시는 미주한인 이민백년사에 서시로 수록되어있음.

“나무에 올라서면 밑뿌리가 있는 것을 생각하고, 물을 마시면 샘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용비어천가의 말씀이다. 이는 이씨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글이나 그 속에 깊은 뜻을 제시하는 강인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미주의 우리 선조들은 1903년 1월13일 외세 일본의 힘에 밀려 정든 조국과 형제들을 이별하고 인천항에서 노예처럼 낡은 배에 실려 거센 풍랑의 태평양 물결을 타고 하와이로 실려 와서 사탕수수 밭에서 노예 아닌 노예와 같이 억울하고 슬픈 노동을 하셨다 이런 선조들의 피와 땀의 결과로 성공한 이민자들의 후손이 된 우리들임을 상기해야 한다. 여기에는 서재필. 안창호. 이승만 같은 수많은 지도자들과 무명의 애국 선조들이 계셨다. 우리들은 조상들의 깊은 뿌리를 생각하는 후예들이 되어야 한다. 등걸 없는 회초리는 없다. 사탕수수밭에서 노동을 하고 손 찔려 오렌지를 따 얻은 돈으로 독립자금을 헌금하신 선조들의 고귀하신 애국정신을 본받아야할 우리들이다.

나의 연인 융프라우(Jungfrau)
                            
님 그리워하는 마음
나날이 깊어
백옥장삼을 걸치고
억만년을 기다렸네.

기다리는 세월이 너무 길었다.
서있는 세월이 너무 길었다.
내 너를 찾아
구름으로 외지를 떠돌고
물결로 강산을 굽어 도는 동안
너는
고향마을 알프스 산록에서
주야 사시장철
춘풍추우(春風秋雨) 혹서동설(酷暑冬雪)을
온 몸으로 안았구나.

기다림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서있는 세월이 너무 오랬다.
숱한 세월의 맥박 속에
바람이
구름이
별빛이
눈비가
네 곁을 스쳐 지나가며
마음을 흔들고
가슴을 두드리고
옷소매를 잡아당겨도
곧은 절개로 버티고 서서
처녀의 머리위에
백발이 서렸구나.

날마다 너를 찾아온다, 온다하면서
칠순을 넘어 너를 찾아
흰 눈이 펄펄 내리는 3,454미터
알프스 융프라우 산정에 오르니
기다리다 지친 노여움으로
짙은 안개 커튼을 드리우고
얼굴을 숨기는구나.

타는 연정(戀情)의
불길 같은 사랑을 억누르고
발길 돌려 떠나오는 내 마음 애닯어
따라오며 차창에 부딪치는 눈물방울
차가운 빗소리!
너의 발소리로 믿으련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 너를 일찍 찾지 못하여
네 가슴에
만년설이 덮였구나,
내 너를 사랑하여
네 가슴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 위에
다섯 손가락을 펴서
나의 손도장을 찍어
카메라에 담아
울며 떠나가노라.

잘 있어, 또 올께
아! 아! 나의 사랑
나의 연인
융프라우.     -정용진, <나의 연인 융프라우> 전문.        
*융프라우는 알프스의 영봉으로 처녀라는 뜻임.

Jungfrau, My Dear
                   by Yong Chin Chong

In her a great depth of longing,
wearing her lily-white monk’s robe,
she has been waiting for countless years.

Too long you waited!
Too long you stood!
And searching for you
I became a cloud wandering,
a wave flowing around the mountain.
You, my dear,
skirted the base of the Alps, your home,
unfailingly day and night
during the four seasons.
You embraced the
Spring wind,
Fall rain,
scorching Summer and
freezing Winter.

While preserving your chastity,
you survived for so many years.
Winds,
clouds,
starlight,
snow and rain
passed by to tempt you.
O, the Virgin’s hair has gone white!

At last, I come to you.
To see you, I climb 3,454-meters.
But you, Jungfrau my love,
drop a foggy veil of exhausted anger
from the long wait for this man
seven decades old.

Holding the fire of love,
I turn back.
The cold sound of rain hits the car window,
and I believe it is your footsteps!

I am sorry,
so truly sorry.
Your long wait for me
left perpetual snow in your heart.
I love you,
so I stretch out my fingers
to seal you.
And I leave you in tears.

Farewell, I will come again.
Oh my Dear!
Oh my Love!
Jungfrau.
  *Jungfrau means 'A Virgin'. The highest peak of this sacred mountain
    of the Alps is 4,158-meters high, which is the highest in Europe.

인간 삶의 모습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이요,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그러나 이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나다. 나는 하나의 모나드(Monad)요, 소우주(小宇宙)다. 나를 떠나서는 일체가 무(無)다. 이러한 삶을 소중하고 윤택하게 이끌어주는 핵심적 요소가 시(詩)다. 그래서 나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즐겨 쓰고 시인이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행복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성철스님이 임게송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불교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떠나셨듯이 시인에게 시란 무엇이요. 묻는다면 일목요연하게 대답하기가 힘들다. 자신이 일생 정성을 기울인 시. 수필. 소설. 희곡 등의 문학 속에서 문리(文理)를 터득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얻기 위하여 반세기를 스스로 묻고 답하며 시를 써왔고 정의를 얻으려고 고심하였다. 그 결론이 시인은 영혼의 언어를 낳는 산모요, 언어의 밭을 가는 쟁기꾼이며, 분명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이다. 자기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시심을 품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끝>
                                                          
정용진(鄭用眞) 시인의 약력
39. 경기 여주출생(아호 秀峯)
1971 년 도미. 지평선 시인동인
미주한국문인협회협 이사장. 회장 역임.
한국 크리스챤 시인협회. 민족문학 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행문회 회원.
Pen USA.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VIP회원.
미주문학상. 한국 크리스챤문학상 대상.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07.08)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ry)수상.
The Best Poems & Poets (05.07) 선정됨.(미국. 국제시인협회)
시집 : 강마을.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 금강산.
너를 향해 사랑의 연을 띄운다(한영). 설중매. (미래문화사)
에세이 :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 시인과 농부.
문예창작교본 :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
샌디에고에서 에덴농장 경영. 샌디에고 문장교실 운영.
E-mail yongchin.c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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