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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8.05.07 15:01

사랑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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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복수




이월란 (07/02/02)





지난 2월 12일 오후 6시 44분, 유타주 솔렉시 소재 트롤리 스퀘어 샤핑몰 서쪽 주차장에 트렌치 코트를 입고 검은 배낭을 맨 한 소년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몰의 서쪽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두 명을 향해 배낭에서 꺼낸 샷건과 3.8 구경 권총을 쏜 뒤 곧바로 몰내로 들어갔다. 복도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을 쓰러뜨리고 선물가게에 들어가 세 명을 차례로 넘어뜨렸다. 돌아서 나와 유아복 상점에서 나오던 모녀에게 다시 총을 난사했다. 단 6분 사이에 15세에서 53세 사이의 5명의 목숨을 앗았고 4명의 중상자를 낸 후 출동한 경찰과 대치 중 사살되었다.

술래이만 텔로비치라는 18세의 이 소년은 보스니아 출신으로 1993년 세르비아계 군인들의 공격으로 네 살 때 어머니를 따라 자신의 집에서 맨발로 도망친 후 1998년 까지 보스니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온 피난민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 이 소년은 유순하고 말이 없는, 그저 평범한 10대에 불과했다.
그가 머물던 1995년 보스니아에선, 전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지지하는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무려 8000명이 넘는 무슬린 남성들을 죽였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가장 잔혹한 대량학살로 기억되고 있다.

다운타운의 동쪽에 위치한 트롤리 스퀘어 샤핑몰은 1908년에 세워진 전차차고를 개조한 건물로 레스토랑, 바, 극장,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비교적 번화한 곳이다. 나도 가끔 들르는 곳이라, 그 시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의 배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총알은 나의 가슴에 박혔을 것이고 나의 피붙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이없이 딸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형제자매를 잃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은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사상자 중 바네사 퀸이라는 29세의 여성은 4년전 결혼당시에 너무 가난해 결혼반지를 구입하지 못했고, 바로 그날 결혼반지를 사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타인의 목숨은 신문지상의 몇 줄의 기사로 마감되어져도 그만인 세상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불특정다수를 향한 범죄자들은 거의 정신질환자이거나 마약 등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상태로 진단받기 일쑤이다. 하지만 난 그 소년에게서 <고갈되어버린 사랑>을 본다.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던가.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던가.
우리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고갈되어 가슴 밑바닥이 긁히게 되면 우린 주저없이 금수(禽獸)가 된다. 되는 일은 하나 없고 세상이 다 등을 돌린 기분일 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쉽게 적(敵)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원망의 대상이며 모두가 저주의 대상으로 둔갑해 버린다.
사랑의 고갈은 절망에 던져진 한 인간에게 그 어떤 자유의 기회도 부여하지 않는다. 체념과 막다른 골목만을 더욱 절박하게 상기시켜 줄 뿐이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그 어린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의 질곡이 남겨주었을 상처보다, 그가 배낭에 총탄을 가득 채우듯 마음 가득 채웠을 빗장들이 그의 손에 하나 둘 닿기 전에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에게 작은 사랑의 씨앗이라도 심어주었었다면......

내 짧지 않은 삶을 돌아보건데, 누구에겐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만큼 미치도록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누구에겐가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될 때보다 더 짙은 환희에 쌓였던 적은 없었다. 밥 숟가락 놓고 나면 사랑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것이 우리들이 아니던가.
섬세한 사랑의 가닥들을 하나 둘 놓쳐갈 때 우린 척박한 빈들에 심어진 허수아비가 될 뿐이지 않던가.

그 거창하고도 광범위한 <사랑>의 시작은 늘 아주 섬세하고도 작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들 삶의 시발역이며 종착역이기도 한 <가정>에서 시작되고 마감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대부분의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어 작게는 가족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거미줄같이 얽힌 조직 안에 속해있기 마련이다. 개인과 그 속한 사회와의 상호관계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개인의 행복과, 가정과, 그 사회의 행복이 도미노처럼 서로 같은 선상에 머물게 됨은 말하면 번설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성과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가장 신선하고도 영원불멸한 추상으로 남는다. 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인성적인 첫사랑은 가족간의 사랑이며 마지막으로 안고 가는 사랑 또한 가족간의 사랑이지 싶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왕이든 농부든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라고 했고 펄벅여사는 가정이 그녀의 대지이며 거기서 정신적인 영양을 섭취한다고 했다. 인간의 행복을 담는 그릇인 가정의 건강수치가 안전하다면 사회의 기강과 윤리 또한 안전지대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가정은 행복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원초적인 희망이라고 한다. 행복의 싹을 틔우는 질좋은 토양으로서 가정의 지반이 튼튼할 때 자라는 청소년들의 폭풍같은 가슴에도 봄꽃같은 사랑은 4월의 목련처럼 피어나는 것이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 그리고 싶어하는 화가가 있었다. 제일 먼저 목사님을 만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목사님은 신앙이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으로 신혼부부를 만나 똑같은 질문을 하자 신혼부부는 사랑이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만난 상이군인은 평화라고 대답을 했다. 화가는 많은 사람들의 대답을 들었지만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실망속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자녀들이 달려나와 매달렸다. 그의 아내가 정성스럽게 차려놓은 식탁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때, 그 순간 화가는 사랑, 신뢰, 평화의 모습을 한꺼번에 발견했고 그 자리에서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행복한 가정, 아이들이 밖으로 돌지 않고 집안에 머물고자 하는 그런 가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값비싼 책상이나 소파가 아니라 그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의 따뜻한 미소란다. 자동차나 식구들이 먹고 자기위해 드나드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주기 위해 문턱을 넘어 들어오시는 아빠의 모습이란다.
아이들은 하루에 적어도 8번 이상의 의미있는 터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바쁜 한 아버지가 늦게 퇴근하여 이 교훈을 실천하기 위해 아이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재빨리 카운트를 하며 아이들을 쳐주곤 “가서 자라” 했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다. 어느 한 문제 청소년은 엄마와 대화가 단절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엄마의 인내와 사랑으로 다시 정상적인 모자관계로 돌아왔단다. 이 엄마가 한달가량 끈기있게 한 거라곤 아침에 아이가 나갈 때 꼭 안아준 것 밖에 없단다. 아무말 없이...  스킨쉽만큼 감동적인 언어가 또 있을까 싶다. 엄마와의 유대가 강할수록 아이들은 잘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가족이 아니면 아무도 줄 수 없는, 돈과 명예도 가져다 줄 수 없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그 정신적인 안정감은 늘 가정에서 온다. 세계적인 추세로 늘어나는 이혼과 고령화는 편부모의 양산을 부추겨 청소년 문제와 장기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유대인들이 재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가정교육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서로 바쁜 생활 속에 나 또한 가족관계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마주칠 때마다 지나가는 아들아이에게 뽀뽀를 청한다. 찡그리는 그 아이의 입술에 내 입술을 꼭 눌러버린다. 변성기가 지나버린 영감같은 목소리로 거부의 뜻을 비치는 동강난 외마디 소리를 뱉어내지만 결코 싫지 않은, 사랑에 겨운 짜증이었다. 아~~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한 사랑~~ 받고 또 받아도 부족한 사랑이여~~

지금 이 땅이 술래이만이란 그 소년이 네 살이란 어린나이에 맨발로 도망쳐야 했던 그 지옥의 땅이 아닌 이상, 8000명의 피가 강이 되어 넘쳤을 그 보스니아 땅이 아닌 이상, 누구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과 좌절을 풀어나가는 방법의 미숙함이 저지른 만행이었기에 그렇게 되기까지 그를 줄곧 외면해왔을 작은 사랑의 손길들이 아쉬울 뿐이다.

고갈 되어버린 사랑이 우리들에게 되돌려준 그 섬뜩한 복수가 내 가정과 아이들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만행을 저지른 그날도 직장에서 정상근무를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마음 속에서 자라고 또 자라 행인들에게 방아쇠를 당기기 전까지 그의 마음속을 질풍노도처럼 휘저어 놓았을 원망과 피해의식으로 끔찍한 가해자가 되기까지 그가 겪었을 막다른 골목에서의 암담함이, 지금 가고 없는 그와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자꾸만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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