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88
어제:
219
전체:
5,030,203

이달의 작가
2008.05.08 10:59

고문(拷問)

조회 수 539 추천 수 4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문(拷問)


                                                           이 월란




똑...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진다
누워 있는 이마 한복판에
일정한 간격으로 똑똑 떨어지는 이 작은 물방울이
점차 채색이 되고
부피가 늘어나고
무게가 실려
모래알이 되고
돌멩이가 되고
급기야 바윗덩어리가 되어
누워있는 사람의 이마에 떨어진다고 한다

끔찍하고도 잔인한 정신적인 고문의 한 방법인
이 물방울 놀이에 관심을 가진적도,
실험도구가 되길 자청했던 적도 없건만
가끔, 아주 가끔, 떨어지는 이 작은 물방울에
내 이마의 정중앙을 조준시키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흘려보았던 눈물방울과 아주 똑같이 생긴 그 하찮은 물방울이
똑...
똑...
똑...
경쾌하게 떨어지다, 어느 순간
서걱서걱 모래알 소리를 섞게 되면
나의 안락한 침실은 고문실로 변해버리고
살갗이 패이는 이마를 누르고 재빨리 몸을 굴린다
바윗덩이로 변하는건 시간문제였다
치매를 상습적으로 앓고 있는 내가
아무도 내 몸을 묶어놓지 않았다는 걸
늘 기억하고 사는건 얼마나 다행인지

영화관에서 막 나왔을 때 한낮의 햇살에 눈이 찔렸던 것처럼
아직 상영중인 영화같은 세상은
초록의 봄을 노래하고 있었고
진달래와 개나리를 급조하듯 피워내고 있었다

어둠을 감지하려 늘어졌던 동공이 햇살에 초점을 맞추려
볼록렌즈같은 수정체로 곡률을 조절하고 있었고
거울 속의 난 모래알을 말끔히 닦아낸 이마에
싸구려 파운데이션을 덕지덕지 쳐바르고 있었다  
                                                
                                                                                                                           2007-03-05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91 떠난다는 것 이월란 2011.09.09 268
1290 고인 물 이월란 2011.09.09 270
1289 아이스크림 차 이월란 2011.09.09 380
1288 젖니 이월란 2011.09.09 248
1287 공존 이월란 2011.09.09 222
1286 견공 시리즈 말(견공시리즈 110) 이월란 2011.09.09 314
1285 견공 시리즈 욕(견공시리즈 109) 이월란 2011.09.09 287
1284 마른꽃 2 이월란 2011.07.26 346
1283 무대 위에서 이월란 2011.07.26 269
1282 레테의 강 이월란 2011.07.26 508
1281 섬에 갇히다 이월란 2011.07.26 318
1280 천국에서 온 메일 이월란 2011.07.26 325
1279 꽃신 이월란 2011.07.26 283
1278 두부조림 이월란 2011.07.26 419
1277 견공 시리즈 오역(견공시리즈 108) 이월란 2011.07.26 293
1276 포츈쿠키 이월란 2011.07.26 249
1275 나이 이월란 2011.07.26 245
1274 기회는 찬스다 이월란 2011.07.26 259
1273 영문 수필 Stress and Coping 이월란 2011.07.26 78566
1272 영문 수필 The Limits and Adaptations of Marginal People 이월란 2011.07.26 278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