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65
어제:
177
전체:
5,020,423

이달의 작가
2008.05.08 10:59

고문(拷問)

조회 수 539 추천 수 4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문(拷問)


                                                           이 월란




똑...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진다
누워 있는 이마 한복판에
일정한 간격으로 똑똑 떨어지는 이 작은 물방울이
점차 채색이 되고
부피가 늘어나고
무게가 실려
모래알이 되고
돌멩이가 되고
급기야 바윗덩어리가 되어
누워있는 사람의 이마에 떨어진다고 한다

끔찍하고도 잔인한 정신적인 고문의 한 방법인
이 물방울 놀이에 관심을 가진적도,
실험도구가 되길 자청했던 적도 없건만
가끔, 아주 가끔, 떨어지는 이 작은 물방울에
내 이마의 정중앙을 조준시키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흘려보았던 눈물방울과 아주 똑같이 생긴 그 하찮은 물방울이
똑...
똑...
똑...
경쾌하게 떨어지다, 어느 순간
서걱서걱 모래알 소리를 섞게 되면
나의 안락한 침실은 고문실로 변해버리고
살갗이 패이는 이마를 누르고 재빨리 몸을 굴린다
바윗덩이로 변하는건 시간문제였다
치매를 상습적으로 앓고 있는 내가
아무도 내 몸을 묶어놓지 않았다는 걸
늘 기억하고 사는건 얼마나 다행인지

영화관에서 막 나왔을 때 한낮의 햇살에 눈이 찔렸던 것처럼
아직 상영중인 영화같은 세상은
초록의 봄을 노래하고 있었고
진달래와 개나리를 급조하듯 피워내고 있었다

어둠을 감지하려 늘어졌던 동공이 햇살에 초점을 맞추려
볼록렌즈같은 수정체로 곡률을 조절하고 있었고
거울 속의 난 모래알을 말끔히 닦아낸 이마에
싸구려 파운데이션을 덕지덕지 쳐바르고 있었다  
                                                
                                                                                                                           2007-03-05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1 흐르는 섬 이월란 2009.01.15 278
1630 흐르는 뼈 이월란 2008.12.09 302
1629 휴대폰 사랑 이월란 2008.05.10 337
1628 제2시집 휴거 이월란 2008.05.12 246
1627 휠체어와 방정식 이월란 2010.03.15 467
1626 견공 시리즈 휘파람(견공시리즈 43) 이월란 2009.10.14 458
1625 횡설수설 악플러-----영혼말이 이월란 2008.11.18 193
1624 횟집 어항 속에서 이월란 2008.10.07 570
1623 회향(懷鄕) 이월란 2008.05.09 299
1622 회유(回游) 이월란 2008.05.09 313
1621 수필 회색지대 이월란 2008.05.07 611
1620 회명晦冥 걷기 2 이월란 2009.12.03 310
1619 회명(晦冥) 걷기 이월란 2008.05.09 352
1618 회귀 이월란 2011.09.09 314
1617 회灰 이월란 2010.07.19 445
1616 황태자의 마지막 사랑 이월란 2009.02.04 345
1615 시평 황숙진 평론 이월란 2016.08.15 39
1614 황사 이월란 2008.05.07 591
1613 환절의 문 이월란 2010.10.29 575
1612 견공 시리즈 환자 토비(견공시리즈 40) 이월란 2009.10.14 34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