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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09 10:28

행복사냥

조회 수 354 추천 수 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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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사냥


                                                                      이 월란





이를 갈며 벼르고 벼르던 난
어느 날 아침, 총을 들고 <행복>이란 놈을 잡으러 갔다
저 오만한 하늘 위에 있다고도
저 도도한 산 위에 있다고도
저 방자한 바람 속에 있다고도
저 엄방진 물 속에 있다고도
보이지 않는 그대의 서늘한 눈 속에 있다고도
하기에......


바로 코 앞에서도 인간의 눈을 멀게 했고
손아귀에 쥐고 있다고 희희낙락하는 사람의 귀에도
<나 잡아 봐라~~> 속삭이며 정신을 혼미하게 헝클어 놓고
절묘한 둔갑술로 순진한 육신들을 현혹시켜
윤간하고, 능욕하고, 희롱하며 농간을 부려온
그 왕싸가지, 괴물, 펄떡거리며 뛰어다니는 그놈을,
지금은 번식 능력마저 쇠하여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그 놈을
산채로 회를 쳐먹는다고 해도 난 속이 시원치 않을 것 같았다


그놈을 복제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바벨탑을, 소돔을, 고모라를 재건하려 밤마다 두드려대는 망치소리 요란했고
가정이란 밑둥이 통째로 잘린
기러기, 독수리, 팽귄같은 신종 조류인간들의 급증으로
우린 펄펄 나부끼는 새털에 숨통이 막히고 있었다


동뜬 하늘로, 고험한 산으로, 호된 바람으로, 유수한 물길로
간담을 녹이던 그대 두 눈 속으로
그렇게 결의에 찬 걸음은 천신만고를 겪으며 삭신에 생채기만 달고
헛총질 한번 못한 실탄의 무게에 허리가 휘어져 집에 돌아온 난
빈손이었다


그런데.......
그 악랄한 놈은 우습게도 집안에서 코까지 드르릉 골며
뱃심 좋게 심장을 벌려놓고 <날 잡아 잡쇼> 자고 있었다
그놈의 식솔들은
낮잠을 자는 아이의 속눈썹 위에서 바르르 떨며 앉아 있었고
문지방을 넘어오는 가장의 베시시한 웃음 속에 두 손 들고 서 있었고
끓어 넘치는 김치찌개의 빨간 갱즙 속에 흐물흐물 녹아나고 있었고
노트북 위에 톡톡거리는 내 손톱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난 그놈을 어이없게도 해치웠던거다


그런데..... 그런데......
어디선가 그 놈에게 얌심을 부리는 목소리 하나
가늘게 고막을 진동시키는 그 요부의 속삭임......
<지금 네가 먹고 있는 행복은 국내산? 중국산? 미제? 짜가?>

                                                                      
                                                                           200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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