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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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을 가이드하는 정신박약자



                                                                                                                                                                                         이 월란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다. 한 사람은 한 손에 든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며 눈을 감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I am Sam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그 Sam처럼 입술을 과장되게 실룩거리면서 팔자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맹인을 가이드하는 정신박약자, 그는 모퉁이를 돌 때 맹인을 배려하지 못했다. 맹인의 허벅지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고 손등이 긁혔다. 그래도 맹인은 억세게 끼인 팔짱을 뿌리치지 않았다.



부모가 되는 법도, 엄마가 되는 법도 배운 적이 없는 또다른 지체부자유자인 난 내게 팔짱을 끼인 청맹과니같은 내 아이를 그렇게 끌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어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인 그랬었나보다, 세상은 너무 높아요, 엄마. 저를 이끌어 주세요. 어느 날 밤, 난 정말 소경처럼 두 눈 꼭 감고 잠든 아이를 붙들고 울었다. 자는 아이의 허벅지엔 파란 멍꽃이 피어 있었고 손등은 긁혀 피가 굳어 있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도 그 아일 배려하지 못했다. 아인 그 생채기들을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노인네 뼈마디 쑤시듯 그 아인 다리를 절룩거릴지도 모른다. 긁힌 손등 위에 짠 눈물방울이 떨어져 아려와 몸소름이 돋을지도 모른다.



무지하다는 건 때론 폭력이다. 어리석다는 건 모진 슬픔이다. 그렇게 아프고, 생채기를 내고서야 앞이 보이게 되고, 깨닫게 되고,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잔인한 단 한번의 인생이다. 한번 모태를 떠나오면 유턴도, 추월도, 후진도 허락되어 있지 않은 삶의 일방통행로에서, 그래서 걸어온 길마다 오돌도돌 돋아난 흉터들이 손 끝에 늘 만져진다는 건......



내일은, 이제 몇 달 후면 내 허락 없이도 신용카드에 사인을 할 수 있고 시집도 갈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그 아이와 키재기를 할 것이다. 새끼손가락 마디의 반의 반이라도 엄마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거울 속에서 확인할 때마다 등붙인 엄마의 엉덩이가 엎어지도록 밀어내며 팔짝 팔짝 좋아라 했던 그 아이이게, 세상은 이 엄마에게도 높고 높은 담이었다고 말해주리라. 그 아일 꼭 껴안고 그렇게 꼬옥 말해주리라.  
                                                                                            
                                                                                                                                                                                    2007-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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