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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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0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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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월란





검지 하나로 간단히 클릭되어 펼쳐지는 온갖 <좋은 글>들은 빈티나는 현실의 거친 피부에 분칠을 하고 첼리스트의 우아한 몸짓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걸어온다. 그리곤 우리에게 속삭인다. 용서하라고, 이해하라고, 사랑하라고...... 어금니를 깨물어도 낮아지지 않는 분노의 수위도 좋은 글 속에선 욕탕에 물 빠지듯 술술 낮아지고, 글이라는 옷을 입히기 전엔 발가벗은 짜증과 지겨움의 치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현실의 몸뚱아리가 사랑이라는 커튼을 두른 눈부신 알몸으로 다가와 일상의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우릴 주눅들게도 만든다.



날 주눅들게 만드는 <좋은 글>은 그렇게 고매한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글>이었다. 그는 고상이라는 휘장에 우아한 주름을 잡기 위해 열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리지도 못한다. 우직하고도 고집스런 독수리타법으로 철자법 무시한 사투리를 가식없이 툭툭 내뱉을 뿐이다. 이리 뒹굴어도 불공평하고 저리 뒹굴어도 기막힌 세상. 구식 교사들의 손찌검에 팔다리가 자랐고 공부엔 취미 없는 뇌수 박혀 태어난 죄로 가세는 기울고 마누라는 새끼들 버리고 바람 따라 날아가버렸단다. 가끔, 버려진 남매의 사진이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열반하던 다보여래의 미소를 어색한 웃음으로 가리고 있었고, 천연색 플래카드같은 소도시의 간판이 자신의 작품이라 자랑스럽게 올려놓아 지기도 했었는데..... 개들의 일상이 뜬금없이 올라오던 어느 날, 개농장을 팔아치우려고 내 놓았더니 거저 먹으려는 놈들만 득실대며 달려들었단다.



우라질 놈의 세상..... 육두문자가 날아다니던 날, 피붙이같은 개들을 몽땅 팔아치우고 그는 낯선 도시로 떠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큰놈을 중학교에 보내지도 못했는데 검정고시를 치르곤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나온 입학식날, 칼같이 다려 입고 나온 눈부신 교복에 실패한 아비의 인생이 환하게 들여다보여 눈물이 났단다. 두 아이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던 그가 이제 해외여행을 간단다. 새 마누라 얻으러 중국으로......

  

사랑은 이렇게, 이별은 이렇게, 행복은 이렇게..... 넘쳐나는 좋은 글들을 읽노라면 사랑에 실패할 수도, 이별에 아파할 수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약점을 교묘히 가리길 좋아하며 고상한 단어들을 찾아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내가 늘 그의 맞춤법 무시해버린 글을 읽을 때마다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를 쫓아내고 사시사철 꽃이 피어있는 온실을 대신 차지해버린 안도감 너머로 묘한 죄책감 같은 것이 고개를 드는 것은 왜일까.
                                                                        
                                                                                                                                                                              20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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