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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09 13:17

마작돌

조회 수 356 추천 수 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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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돌


                                                                                                                                                           이 월란




저 *작은집에다 큰집 몇 채를 날린 인간,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들락거리지, 손모가지가 날아가도 안돼. 스텔라 얘기 들었니? *윈도벌에서 8000불을 땄대잖아. 화장실엔 잭팟(jackpot)을 터뜨린 얼굴들로 지면을 채운 Wendover Times 가 바닥에 널부러져, 라스베가스 프리웨이를 지나치기만 해도 두통이 온다는 어느 성직자의 수준도 못되는 내게도 악취를 풍기지.


안방의 명화극장이 끝날 때 쯤이면 아프리카산 귀족 코끼리의 어금니를 뽑아 만든 것 같은 상아빛 마작돌이 가지런히 들어있는 파란 쎄무가방을 보물처럼 옆구리에 끼고 들어오시던 아버지. <문전엎어땡겨겐쇼겐쇼> 하는 뜻 모를 소리가 자주 들리는 날은 용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미적분보다 먼저 깨달았었지. 그 너구리패들은 다음 날 학교에서 마작돌에 새겨진 한문을 가르쳤고. 큰언니와 형부가 아버지로부터 마작수업을 받는 날이면 패가망신으로 가는 집이 아니라 행복을 따는 소리만 따가닥따가닥 들려왔는데.


자정이 넘도록 136개의 상아조각들을 따가닥따가닥 가지고 노시다 턱수염 자란 초췌한 얼굴로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굽은 등을, <주말에 아버지 계시냐?> 속삭이시던 그 할아버지 교사들을 난 결코 경멸하지 않았어. 귀여우셨지. 인생은 어차피 도박인걸. 중국의 실내오락을 착실히 즐기시며 교사의 체면도 버리시고 인생이 도박임을 온 몸으로 가르쳐 주시던 인간미 넘치는 그 분들을 말야. 그 마작돌을 다시 만져본다면 난 신나게 살다가신 아버지가 그리워 울고 말거야.


32개의 골패나 136개의 마작, 48개의 화투나 53장의 트럼프가 필요없는 너와 나의 삶도 요행수를 바라며 포커테이블 같은 침대에서 잠들지 않았니. 늘 두 갈래 길에서 내기를 하듯 선택을 강요받으며 머리가 굵어지지 않았니. 그래서 지금은 투전판의 뒷돈처럼 한정없이 날아드는 청구서들에 머릴 조아리며 도태되어 버린, 판돈 없는 길엔 늘 꿈이란 안개가루를 부지런히 뿌려대지.

  
솔, 매화, 벚꽃, 난초, 모란, 국화, 오동 따위의 12가지 꽃그림에 취해 너구리를 잡느라 밤을 패는 인간들을 12월 비광 속의 *오노도후는 버드나무 오르려 발버둥치던 개구리를 보듯 아마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을거야.
                                                                            
                                                                                                                                                           2007.7.3



* 작은집 : 유타의 도박꾼들은 운전거리 6시간에 위치한 라스베가스를 큰집으로, 윈도벌을 작은집으로 부름.

* 윈도버 (Wendover) : 유타와 네바다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유타의 주도인 솔트레익시티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도박도시. 유타주는 도박이나 복권의 판매가 불법임)

* 오노도후 : 미치카제라는 일본의 3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장마철에 빗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버드나무를 기어오르는 개울 속의 개구리를 보고 크게 깨달아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되었다.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의 12월, <비광> 속에는 그래서 개구리와 버드나무, 우산 쓴 오노도후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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