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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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10 07:50

미로아(迷路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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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아(迷路兒)


          
                                                          이 월란




오늘같은 날은 길을 잃어도 좋겠네
잃어서 다시 찾을 그 길이 이 길이어도
몸 밖으로 길게 뻗어나와 찾아야 할 이 길이
학의 목같은 기다림 속에서
묵은지처럼 짭쪼롬한 권태에 절여진 이 길이
헤매임 속에서 한번 헹구어진다면, 한번 더 간이 배인다면


오늘 같은 날은 눈속임하듯 슬쩍 놓아버리고 길을 잃어도 좋겠네
애 태우듯 다시 찾아가고 싶어지겠네
무언가에 닿아야만 길이 보여지던 바람처럼
헤살놓듯 투명히 가로막은 장애물들이 한걸음 비켜서면
바람에 흔들리듯 훤히 보일 것 같아


오늘 같은 날은 길을 잃어도 좋겠네
가다가, 나처럼 길 잃은 소낙비를 만나 남의 집 처마아래
하염없이 빗살과 눈 맞추고 서 있어도 좋겠네
추월에 정신 팔린 차바퀴에 흙탕물이 튀어도 분내지 않을 것 같은
오늘 같은 날


나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이란 걸 알면서도
목 뺀 담장 너머로 끊임없이 연서(戀書)를 띄우는 나를
용서하고 싶지 않은 오늘 같은 날은


성대도 생식기도 제거된 불비(不備)의 연골로도
빳빳이 걸어갈 수 있는 법을 어느정도 익힌 불혹(不惑)의 나이 어디 쯤에서
평생이 미혹(迷惑)일 것 같은 난, 길을 잃어도 좋겠네
                                                  
                                                                                                                                                        200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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