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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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월란




누군가의 몸 속엔 금침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나의 몸 속엔 가시들이 떠돌고 있다, 유독한 위산에도 삭아내리지 못한 것들, 혈관 속에 길게 누워 종이배처럼 한가로이 떠다니다 언어의 물숨을 타고 내려와 숨가쁜 詩가 되기도 했던, 환형동물의 극모를 닮은 고슴돛의 극침같은 것들


어느 날은 모로 박혀 혈관을 찌르기도, 가슴벽의 여린 살점을 긁어내기도 한다. 목젖까지 차고 오르기도, 응어리되어 턱 막혀버리기도 하는 매맞은 멍울들, 얼마나 많은 미운 사람들을, 얼마나 많은 싫은 소리들을 씹다가 뱉어냈으며 여린 잔뼈들이라 바수어 삼키기도 했었나


내 가슴 감싸기 위해 밤송이처럼 돋친, 철망으로 세운 바잣문 안에 수수깡같은 덤불로 쌓아 올린 젖내 나는 초막집은 아직도 지어지고, 살아 있어 내게 온 것들은 찬바람조차도 얼마나 눈물겨운 것들일진대. 스산한 가슴의 빈터에 내리 꽂혀 가시꽃을 피우기도 했을 뒤안길


가시 많은 생선을 발라먹다가 숨구멍 막으며 캑캑거리기도, 마른 밥덩이를 목구멍에 쑤셔넣어 보기도, 포르말린 냄새 지독한 수돗물을 꿀꺽꿀꺽 삼켜 보기도 했었으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늘 즐겨먹는 등 푸른 생선의 굵지도 못한, 삼켜지리라 쉽게 속았던 그런 삶의 거스러미들


늘 생선가시가 되어 목구멍에 턱 자리잡은 것들이
마른기침이나
마른 밥덩이나
혹은 소독되지 못한 수돗물로도
삼켜지지 못하고 숱한 잔뼈들로 자라나
흰피톨을 돌고 돌아도 배설구를 찾지 못하는
절망과, 어이없음과, 부질없음의 이름으로도 기꺼이 자라난
체절마다 박힌 어리석은 나의 가시목들
                                                            
      
                                                                                                                                200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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