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어져가는 기억들
이 월란
1
가슴에 손을 넣고
호면(湖面)에 물비늘처럼 떠도는 언어들을 만져본다
건지려다 날 세운 언어에 가슴이 베인다
건져내어지지 못한 언어는 현실과 꿈 사이에 성(城)을 쌓고
성 밖에서 서성이는 자폐증의 아희가 되어간다
붉은 피 흥건히 배어난 기억의 붕대는 술술 풀어지고
2
어린시절 엄마가 담궈 놓은 생리혈 가득한 양동이를 보며
저런 붉은 피를 매일 쏟아내고도 엄마의 얼굴은 눈처럼 희고 눈부셔
사람들이 참으로 모질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편집해서 놓아둔 것 같던 후미진 삶의 단상
그 알싸하게 젖어오던 삶의 피비린내
붉은 개짐은 하얗게 표백되어가고
하늘 모퉁이는 양동이의 물을 퍼부은 듯 붉어져가고 있었다
3
살아있는 것들의 출혈은 멈추지 않는다
하늘은 혈관 밖으로 본정(本情)을 드러내고
슴베에 찔린 듯 기억의 거즈를 감고
홀로 붉어졌다 희어졌다
낙양(落陽) 아래 심지 없이도
저토록 서러이 타오르고
2007-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