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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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10 08:54

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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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


                                                                   이 월란




가붓한 입술보다 무거운 말도 말없이 하는 건 손이더라
지난 날의 슬픔, 형체 없이도 만져지고
가슴을 맴도는 허황의 말들, 열개의 지문으로 더 선명히 찍혀지더라
냉정의 섬뜩함도 열정의 뜨거움도 손끝에 달려 있어
점자책을 더듬는 청맹과니의 손끝처럼 미세한 떨림으로
마음의 창을 묵언의 수행처럼 닦아내고 있더라
마주한 고통의 낯선 얼굴마저도 때론 손끝에서 만져져
지친 가슴의 차양 아래 희원 밝힌 연등을 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은 손을 잡고 가야 하더라
그렇게 철 없이 잡은 손 흔들며 가다가
붙든 손 허망히 놓치더라도
하회를 기다리는 낭속의 엎드림으로
꺾어진 무릎 위에라도 홀로 두 손 모으고
가야 하는 길 위에 우리가 서 있더라
밤새 소리 없이 내려 쌓인 기억의 폭설 위로도
사랑은 그렇게 턱밑의 손끝에서 오고야 말더라
발은 떠나도 손은 떠나지 못해
또 하나의 가슴은 손끝에 달려 있더라
가파른 길, 뒤에서 밀어주는 손끝에서
어두운 길, 앞에서 잡아주는 손끝에서
새벽별 맞이하는 소설(素雪)의 신밀한 섬화처럼
그렇게 쌓여, 눈 앞에서 알알이 맺혀 오더라
가슴은 때로 너무 멀어
차라리 사랑은 손끝에서 먼저 오더라

                                          
                                                                2007-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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