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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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10 09:49

Dexter

조회 수 248 추천 수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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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xter


                                                                                                       이 월란




Dexter 는 눈이 마주치거나, 안아주거나, 만져줄 때마다 몇 마디씩 말을 한다. 그 원시적인 언어의 장단과 고저, 톤에 따라 내 마음대로 이해해 버린다. 그의 언어를 알아 들을 수 없다는건 얼마나 다행인가. <컴퓨터만 끌어 안고 있지 말고 나랑 놀아주세요, 난 아주 심심해요> 그렇게 몇 번 칭얼댔다간 바로 미아보호소로 보내버릴테니까.


두통이나 복통에 시달리고 있다거나, 불면증이 왔다거나 하는 그런 소통조차 불가능하지만, <잠이 와요> <놀고 싶어요> <안아 주세요> <배가 고파요> <기분이 좋아요> 이상, 5가지의 언어만으로도 끝끝내 사랑 주고 사랑 받는, 얼마나 근사한 관계인가.


Dexter 는 내가 심심할 때만 같이 놀아 주고, 내가 안고 싶을 때만 안기고, 내가 바쁠 때는 찍 소리도 말고 차려놓은 살림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혼자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죽여주면 되는 것이다. 주는대로 먹고, 제자리에 싸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완벽한 사랑의 대상. 우린 그런 Dexter 같은 사람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현명하게 <외로움>을 선택한, 24시간 진정한 사랑만 부르짖는 고매한 인간들이다.  


이혼한 와이프, 별거 중인 남편, 토라져 냉전 중인 애인, 원수가 되어버린 친구, 남보다도 못한 형제자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자식을 둔 사람들도 강아지나 고양이와는 그들이 죽어 나자빠질 때까지 닦아주고, 씻겨주고, 이뻐하며 애지중지 잘도 같이 산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Yes>나 <No>도 아닌 <멍멍!!>이나 <야옹~> 뿐이니까.


방사선 앞에서 생식을 도난당한 성대 잃고 거세된 불비(不備)의 작은 연골, 당신 손가락 하나에 패대기를 당해도, 완애(玩愛)의 환희와 기쁨으로 살쪄 날뛰는 금수의 사랑, 해보셨나요?  
                                                                        
                                                                                                    2007.9.27



* Dexter : 며칠 전부터 동거 중인 아기고양이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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