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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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해질 때도 된, 하지만 내겐 더욱 절실해지기만 하는 오늘도



                                                                                        이 월란

  


생각없이 살았습니다
척박해지는 심저의 마음 한 뼘 일구지 못하고
한겹 살갗의 손바닥만한 얼굴만 빤지르르 닦았습니다
어미짐승은 매일 새끼를 두고 먹이를 찾아나섭니다
어린 날 정 주었던 조막친구 한번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 여기 있다고 눈만 들면 보이는 저 파란 하늘 한 줌
눈맞추지 못하고 자갈 박힌 땅만 보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오늘도 죄인이길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자유가 그립지도 못했습니다
착한 노예처럼 길들여진 생을 한움큼 파먹고
이빨 후비며 트림하는 미식가처럼 순간의 포만감에 나를 버려두었습니다
오늘도 죄수의 우두머리가 되길 자처했습니다
죄짓듯 하루의 나이를 꼼꼼이 챙겨 먹고
흰눈같이 내린 고봉밥으로 붉은 살점을 채웠습니다
허망한 욕심으로 달아오르는 적당한 부위마다 자위의 손가락을 놀리는
아, 오늘도 나는 한 마리 배고픈 짐승이었습니다
날마다 자라는 부리를 내어 생을 콕콕 쪼아먹고도
명백한 세상 끝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세월만 보내고 나를 같이 실어 보내진 못했습니다
A4용지 반쪽으로 면죄부를 만들고
세월의 손익계산서를 영원한 습관처럼 철해 두었습니다
부족함 없이 가진 감사의 눈물, 철지난 멜로드라마 같다 꼴깍 삼켜버리고
꿈과 희망으로 채워도 시원찮을, 고철상에 날아다니는 불온삐라같은 습작노트에
절망과 우울의 사치만 조악한 벽지처럼 덕지덕지 발라 놓았습니다
땅거미 스물스물 내 몸까지 기어오르면 <CLOSED>
영업 끝났습니다, 생각의 셔터를 내리고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만 말갛게 씻고 누웠습니다
꿈 속에서도 금지된 장난에 한눈을 팔았습니다

                                                
                                                                                200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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