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75
어제:
276
전체:
5,028,769

이달의 작가
2008.05.10 12:45

저녁별

조회 수 253 추천 수 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녁별


                                                                                                                   이 월란
                                                                                                                                                  


찬연한 어둠의 무대가 차려지기도 전, 대본을 잃어버린 빙충맞은 신인배우처럼 허둥지둥 나와버렸다.
왜 태어났을까. 아직 어둠을 모르는데. 왜 생겨났을까. 저리 서투른 외눈박이 눈빛으로. 절망으로 빚은
삶의 좌판 위에 카스트로 목이 졸린 데칸고원의 달릿*같은 가녀린 목숨으로.


생리 중의 도벽같은 습관성 우울이 싸늘히 옆에 뜨고. 어둠의 정교한 끌로 세공되지 못한 저 어슴푸릇
한 조명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생의 가녘으로 밀려난 내 잊혀진 사랑으로. 그 땐 내 작은 우주
를 다 비추고도, 아니 태우고도 남았을 단 하나의 기억으로.


나의 시를 죽을 때까지 읽게 해 달라던, 나의 시어들을 따라 움직일 얼굴 없는 독자의 숨겨진 눈빛처럼.
마음을 구걸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겸허히도 떠 있다. 하늘의 오선지 위에 엇박자로 잘린
싱커페이션같은 음보 하나. 실낱같이 잦아드는 한숨도 위태한 저 혈연같은 여윈 빛에 잇대어 보면. 왜
태어났을까. 이 환한 저녁에.

                                                                                                                         2008-03-25





* 달릿(Dalit) : 산스크리트어로 ‘깨진’ ‘짓밟힌’이란 뜻으로 신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상위 카스트를
                    섬기는 최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untouchable)을 가리킨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51 영시집 The way of the wind 이월란 2010.04.05 445
1350 푸드 포이즌 이월란 2009.12.20 445
1349 마로니에 화방 이월란 2009.08.06 445
1348 견공 시리즈 엄마 엄마 나 죽거든 (견공시리즈 119) 이월란 2012.04.10 444
1347 전설의 고향 이월란 2010.12.14 444
1346 견공 시리즈 그 분의 짜증(견공시리즈 59) 이월란 2010.03.22 444
1345 제1시집 무통분만실 이월란 2008.05.08 444
1344 견공 시리즈 안녕 코코(견공시리즈 114) 이월란 2012.01.17 443
1343 대박 조짐 이월란 2011.12.14 443
1342 안개 이월란 2010.03.30 443
1341 그녀는 동거 중 이월란 2009.05.12 443
1340 동시 7편 이월란 2008.05.09 443
1339 투어가이 이월란 2010.12.26 442
1338 단풍론 이월란 2010.07.09 442
1337 눈별 이월란 2010.03.15 442
1336 주차위반 이월란 2010.02.28 442
1335 사막식당 이월란 2009.06.17 442
1334 제3시집 감염자 이월란 2011.01.30 441
1333 B and B letter 이월란 2010.12.14 441
1332 눈이 목마른, 그 이름 이월란 2010.11.24 441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