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물 위에 뜬 잠 1

by 이월란 posted May 1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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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뜬 잠 1


이월란(08-04-09)


살아있는 풍경이란 살비듬같은 포말의 무늬 뿐인
세월도 길을 잃고 잠시 외출 중인 거대한 물의 땅
생각의 노예가 되어 하루의 마디마디가 쓰리던 날
절름거리는 소망의 버팀목에 버뮤다 섬의 몽돌 하나 받쳐두고
어스름 비쳐드는 해질녘에
전등 아래 흘러내린 앞머리칼의 밑동이 하얗게 세어 있어
어둠을 포식한 바닷곬 시간들이 선실 붙박이장마다
익숙한 체위로 몸을 누이면
나도 누워야지, 죽은 듯이 눕는 것이 종국의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썩어질 육신만이 이토록 따스한데
가랑가랑 천식기 섞인 노구의 지친 호흡에
은퇴한 육신…… 꿈인가요?
침노당한 나의 천국을 위해 흘려도 되는 눈물은 저장되어 있나요?
예약된 미래로의 여행은 오늘 취소하겠어요
연착, 연착이랍니다, 지금 내가 탄 호화로운 배는 최고속도 24knots
sheep과 ship의 발음차이를 연습하며 호흡을 삭였지요
음메에에~ 하고 남편이 나를 놀렸거든요
돛에 달려 잠든 입술에 18세 소녀들이 즐겨 바르는 펄 섞인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면, 오늘의 성구 암송 구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이사야 2장 22절
나의 신이여, 차라리 나의 손과 발을 바꿔 달아 놓지 않으셨나요
이리도 미친 듯 날뛰는 시퍼런 인생들을
여기저기 재미롭게 저질러 놓으시곤
보아도 알지 못해요, 들어도 깨닫지 못해요
앉아 있던 의자를 빼버리시곤 앉아있던 그 자세로 평생을 기뻐하라
다독이는 신이시여
발이 저려 옵니다, 무릎이 떨려옵니다
잠시 주저앉고 싶은 오늘, 생각에 혹사당하는 노예를 헐값에 사신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 버뮤다 크루즈 중 대서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