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91
어제:
307
전체:
5,024,452

이달의 작가
2008.05.27 12:24

격자무늬 선반

조회 수 341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격자무늬 선반



                                                                        이 월란



참으로 오랜만에, 손님을 치르느라 대청소를 했고 온종일 요리도 했다
집안은 반들반들 살아났고 냉장고엔 남은 음식들이 그득했다
손님들이 우루루 떠나가고 차고에 잠시 앉아 있었다


한쪽 벽면 전체가 모두 선반으로 꽉 차 있다
집안은 살아났는데 차고는 아직 죽어 있다
아이스박스, 빈박스, 물통, 카셑라디오, 신발, 청소도구, 각종 연장들......
혹시나 필요해질까, 버리지 못하고 쌓여진 것들이 더 많다
비어 있어야 할 것들이 묘한 기다림을 품고 있다


사방이 선반으로 꽉 찬 내 안에 고인 잔상들의 청사진이다
부정한 길들의 도면이 내장되어 있고
험란한 회로엔 영원히 불이 들어오지 않을 듯 소등 상태이다
때론 경이로웠던, 영원히 발굴되지 않을 무덤 속의 벽화처럼


분분했던 열탕 속 심정들이 무반주로 앉아 있고
복직을 기다리는 해고된 시간들이 누추한 호흡을 감당해내고 있다
저것들이 언제 다 필요할 것이라고
슬픈 눈 하나씩 달고 외눈박이 기다림을 지워내고 있다


기다림은 늘 그랬다
까치발 디딘 선반 위에 호명되지 못할 천성이 먼지로 분칠을 하고
엎드려 있을지라도 내 기억의 통로는 함몰된지 오래다
지독한 미련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 꼭대기 층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시간 아래
격자무늬 시렁 하나 또 못이 쾅쾅 박히고
한뎃바람에 먼지만 삼킬 상한 꿈 하나 또 얹어 놓고야 만다


                                                                 2008-05-27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1 견공 시리즈 보이지 않는 얼굴(견공시리즈 88) 이월란 2011.01.30 395
450 견공 시리즈 날아라 엘리(견공시리즈 89) 이월란 2011.01.30 490
449 바이바이 스노우맨 이월란 2011.01.30 446
448 기우杞憂 이월란 2011.01.30 498
447 질투 2 이월란 2011.01.30 450
446 수신자 불명 이월란 2011.01.30 627
445 관계 이월란 2011.01.30 495
444 제3시집 화성인 이월란 2011.01.30 440
443 제3시집 감염자 이월란 2011.01.30 441
442 영문 수필 Mortal Gods 이월란 2011.03.18 415
441 영문 수필 "Letting Go" 이월란 2011.03.18 326
440 영문 수필 Self-Assessment 이월란 2011.03.18 343
439 영문 수필 Transformation of Picasso 이월란 2011.03.18 281
438 견공 시리즈 안녕, 엘리1 (견공시리즈 90) 이월란 2011.03.18 346
437 견공 시리즈 안녕, 엘리2 (견공시리즈 91) 이월란 2011.03.18 491
436 주정하는 새 이월란 2011.03.18 414
435 겨울비 이월란 2011.03.18 434
434 대숲 이월란 2011.03.18 363
433 밤섬 이월란 2011.03.18 377
432 히키코모리 이월란 2011.03.18 396
Board Pagination Prev 1 ...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