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解凍)

by 이월란 posted Jan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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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解凍)


                                                                                이월란



냉동 고등어 한 마리를 냉장실로 옮겨 놓았다.
고등어저냐를 해먹을 요량이었는데 그만 이틀이 지나버렸다
토막을 치고, 내장을 들어내고, 말끔히 찬물에 씻어
소금을 뿌려두든지, 오븐에 넣어 버리든지 해야 할 것이다


이틀이 지나면서 왜 내 몸에서 고등어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인가
자아(自我)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적어도 유년의 냉동실 안에선
빙점 이하로 맞춰 놓은 타고난 외계는 흐르지 않는 강이었다
성어가 되자마자 흉물스럽게도 은밀히 시작되는 우리, 늙어가기


상온에선 부패가 시작되기 마련
비늘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던 얼음조각들이 갈라지고
딱딱했던 망각의 은백색 뱃가죽 위로
쭈글쭈글 살아나는 바다의 지문은 슬퍼
비루해진 아가미 너머로 수채화 물감같은 피가 번져나왔다


즐거운 식탁 위의 제물이 되기 위해
동상 걸린 듯 발가락 사이로 저릿저릿 몸저림이 온 것은
눈알이 빠져나간 생선머리가 된 것은
냉장육의 응고된 심장으로 파헤쳐진 것은
神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 다시 돌아가는 행려의 길
  

마지막 조립을 위해 해체를 기다리는, 그리 신선하지 못한 영혼
토르소같은 기형의 몸피에 붙은 지느러미, 마저 비릿해지면
수평선같은 몸도 기울겠다, 쏟아지겠다
미생물처럼 달라붙어 살점을 분해하기 시작하는
냉색 짙은 세상은 거대한 냉장실, 시리고 춥다
바다와 뭍의 경계에도 살얼음 풀리면
질퍽한 공터에도 봄은 길 찾아오는 것인가

                                                                             2009-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