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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2시집
2008.06.17 13:10

그리움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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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제국



                                                                                이 월란




사람들은 다 하늘의 별 같아서, 하룻밤 새 반짝하고 사라지는 별 같아서 마음 다 가진 듯 별꽃처럼 피었다 사라져. 그립다는 것은 번개처럼 보였다 사라지는, 두 눈이 번갈아 저지르는 착시인 줄 알았던거지. 그립다는 것은 한 시절 피었다 저버리는 저 간사한 꽃 같아서 마음이 걸어오는 수작인 줄만 알았던거지.


저 산 너머엔, 저 별 너머엔 그리움의 나라가 세워져 있을거라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멀어진 것들은 모두 그 그리움의 나라로 생을 반납하고 투항해버린 난민들의 수용소일거라고. 저 사차원의 귀퉁이 어디쯤에서 반군의 우두머리들처럼 모반의 세월을 연명하다 연명하다 우릴 한번씩 염탐해 오고 공격해 오는 몹쓸 염병같은 거라고. 천진한 아이가 현실의 사립 밖에서 흙장난을 치다 걸려버린, 목숨을 앗을지도 모르는 파상풍같은 거라고.
  

글쎄, 그 멀뚱한 눈의 착시가, 그 간사한 반란군의 나라가 나도 몰래 나를 다녀간 완리창청같이 길게 이어진 타인들의 발자국이었다면 보기좋게 속은거야, 난. 아름다운 타짜꾼들이 넘쳐나는 세상일 줄이야. 고알이라도 해서 뿌리채 뽑아버리고 싶지만 접수창고는 없어, 저 그리움의 나라엔. 내가 왕이 되기도 노예가 되기도 했던 그 나라엔 국경 줄줄이 녹지 않는 빙화가 은화처럼 만발하고 환절의 문턱마다 새로 상영되는 영화 포스터처럼 기억 속의 서러운 얼굴들 하나같이 웃고 있는 그들만의 철책 높은 낙원인데.


그 시린 영토에도 매일 해가 뜨고 매일 해가 진다는 것이야. 해지면 시리고 해뜨면 뜨거워 허물어도 번성하는 사막의 한랭지. 그 허망한 제국의 건국신화 속엔 왕이며 노비인 내가 일등공신이래지. 눈물의 조공을 갖다 바치는 속국의 사신처럼 늘 비굴해지진 말아야지. 버리고 온 것들에게 오히려 붙들려 포로로 살아도 결코 독립을 꿈꾸진 못한다고.


아름다운 전투를 위해 슬픔의 갑옷을 입고 고독의 창을 던지며, 황제같은 이별 한 분 또 추대해 놓은 내 머리 위로 하루해가 또 졌다는 건 언젠가는, 그리움같은 건 시퍼렇게 죽고 없다는 그 바다에 닿을 마르지 않을 강줄기 하나 파헤쳐 보는 일이 아니었는지. 유성처럼 내린 빛 사이 사이 세워진 푸른 감옥 속에서 착고 채워진 발목을 달래는 일이 아니었는지.

                                                                                 2008-06-17



[시평] 미주문학 2009년 봄호 ------------------------- 도종환


그립다는 것은 한 시절 피었다 져버리는 저 간사한 꽃 같아서 마음이 걸어오는 수작인 줄만 알았던 거지.// 저 산 너머엔 그리움의 나라가 세워져 있을 거라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멀어진 것들은 모두 그 그리움의 나라로 생을 반납하고 투항해버린 난민들의 수용소일거라고, 저 사차원의 귀퉁이 어디쯤에서 반군의 우두머리들처럼 모반의 세월을 연명하다 연명하다 우릴 한 번씩 염탐해 오고 공격해 오는 몹씁 염병같은 거라고.” (이월란, 그리움의 제국, 중에서)

이 시는 그리움이란 소재 하나를 상상만으로 어디까지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월란의 상상력 이어가기는 박정대의 시를 방불하게 하는 힘이 있다. 번개처럼 보였다 사라지기도 하고 착시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그리움이, ‘번개-착시-간사한 꽃-마음의 수작-그리움의 나라-난민 수용소-염병-파상풍-내가 왕이 되기도 노예가 되기도 했던 그 나라-그 시린 영토-사막의 한랭지-허망한 제국-푸른 감옥으로 이어져 나가는 동안 독자들은 화자의 상상력을 따라가며 황홀하기도 하고 감탄을 연발하기도 하면 때론 화가 나기도 할지 모른다. 문학이 가진 가장 큰 힘 중의 하나가 상상력이라는 걸 확인하기 때문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상상력을 끌고 갈 수 있는지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화가 나기도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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