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장마
이 월란
비의 나라를 떠나온 후 난 이제 비를 통역하는 법을 잊고 말았지
가끔 사막의 비린 낮달 아래서도 여우비가 슬쩍 다녀가면
쇠심줄 끊어버린 듯 허공 가득 뚝
잘린 빗줄기들이 모빌처럼 걸려 있어
풍장의 한뎃장사에 길들여진 마른 시가지
탈색된 거리의 사람들은 물로 빚은 몸도 물소리에 몸소름이 돋아
바삭바삭 흔들개비처럼 사라지면
하늘이 점지해 놓은 오열의 시점, 고집스럽게도 늘 그 자리에서
그렇게 쏟아지고 있다니, 나의 전생같은 마른 반섬엔
비운을 잠재우듯 씻김굿이 한창일 비의 사원
젖은 영혼들 쿨럭이는 밭은기침 삭이며 머리칼 잘린 수도승처럼
잃어버린 우산을 찾아 하늘의 상처를 가리고
밤익은 투명한 오브제가 방울방울 창틀마다 고이겠지
길흉을 점치던 풍향계도 방향을 잃고
꺾인 바람의 날개마저 뗏목처럼 떠내려 가고 있을까
비설거지 마친 도시의 스카이라인 아래
휑한 옥상의 빨랫줄, 홈빡 젖은 문자들이 허리를 꺾을 때마다
신열에 들뜬 몸 따라 관능이 약물처럼 흘러도
한줄기 빗물 따라 그렇게 떠나보내려 했을까
저 하늘의 정체는 이쯤에서 외면해 주기로 하자
침수된 세상은 천상의 순환고리
이역의 투망 아래 마른 땅에서 첨벙 미끄러져도
저 하늘, 묵시의 언어는 이제 그만 못 본 체하기로 하자
마른 하늘 아래서도 가슴엔 장마지는데
2008-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