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4 13:27

나에게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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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말 걸기


                                                                      이 월란



꼼짝없이 서러울 때
살아 왔다는 것이, 산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
저기 저어기 걸어가는 순례자의 뒷모습 가득
물살처럼 번지는 하늘의 그림자
조각 조각 퍼즐처럼 부서져 내리는 몸살이
내 속으로 고스란히 걸어 들어오는 시간
장거리 여행 후의 멀미 같은 것이, 해저를 도는 어질증 같은 것이
창살 두른 가슴에 집으로 돌아 온 듯 들이닥쳐

  
잠자는 세상의 숲, 그 숲 속으로 푸드득 날아간 흉조 한 마리
밤길 가로등이 훤히 드러낸 빗금처럼 긁힌 가슴 한 줄에 앉아
입을 틀어막고 엎드려, 아직도 말 할 수 없는 저 풍경들을 지나서
은암같은 죄업을 진 만지면 날아가는 사람들, 들불 놓고 가면
심장 가득 폭행처럼 불 지르고 가면


천년 만년 발음을 익히지 못한 나를 종일 바라보며
칩거 중인 마찰음과 비음 사이 초록 이끼들이 발을 뻗어
입 아래 고목같은 몸이 있어 만져보니 주먹바위처럼 단단하다
독오른 뱀같은 붉은 입술이 두려워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해
옥고를 치른 피폐한 계절의 틈서리
입 안에 무수한 가시들이 나를 찌른다
돌담 밑에 꽃 피는 소리만 자지러지는데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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