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2008.07.11 14:03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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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월란




나를 놓아 보면, 슬쩍 놓아 보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데려가고 있다. 굵은 지퍼로 입 꽈악 다물고 떠나기 위해 머무르는 여행가방 하나가 나를 덥석 문다. 호텔 속, 일회용 납작비누로 나를 씻겨 보면 진담 속에 농담 같은 아침. 탈속의 희열로, 침묵 속의 환호로 낯선 시트에 몸을 감아도 보고. 부르즈와의 허리띠를 풀면 매일 다시 태어나도록 분양 받은 새 하늘과 새 땅 위에서 유색인도 무색인도 아닌 회색의 보헤미안이 되어.



무정부의 시민이 되어 구석구석 훔쳐보는 도벽을 숨긴 사람들. 꿈꾸는 무법자가 되어, 무소속의 정치인이 되어 24시간 새 당을 짓고, 생식의 유전자는 오늘 방생 중, 생존의 무기를 놓아버린 우린 아름다운 패잔병. 정맥으로 스미는 푸른 공기알마다 모르핀을 삼킨 듯 차창 밖에는 놀란 듯 일어섰다 쓰러지는 낯선 풍경들, 위에 한 줌씩 뿌리며 가는 떠나면서도 떠나고픈 이 간사한 본성을.



활등처럼 굽은 분신들이 과녁을 놓치고 돌아오는 여정 속에, 시를 쓰는 일 만큼이나 공허한 몸부림으로 낯선 곳에 가면 왜 더 자주 배가 고플까. 비우면서 가도 다 못 비울 이 세월에 오늘도 채워지는, 나의 체중을 훌쩍 넘어버린 이 묵직한 가방. 본향을 향해 알몸으로 떠나면서도 씻기고, 닦이고, 입혀야 하는 천근같은 이승의 가방 한번 들었다 놓아 본다.


                                                                            20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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