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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2시집
2008.08.08 13:31

입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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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


                                                                                                                                         이 월란



뒤뜰로 난 차고 뒷문을 잠그러 나갔더니 애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뒤란 숲 속에서 들려왔다. 가르랑 가르랑 유쾌한 담(痰) 끓는 소리. 음모자가 숨어 있다. 가을은 벌써 이웃나라 국경 쯤에서 항오를 벌이고 있으려나. 천지를 물들일 기막힌 무대장치를 위해 미리 보낸 정탐꾼은 목젖 붓도록 성하에 지친 가슴을 염탐하고 있으니.


목숨 있는 것들은 다 저렇게 울고 있나. 허공을 부여잡고 울고 있어야 하나. 왜 운단 말인가. 부모 가슴에 못 박아 보았다던가. 자식 때문에 피눈물 흘려 보았다던가. 사는 것이 기막혀 기막히지 않은 죽음을 옆구리에 차고 다녀 보았다던가. 저 하찮은 미물이 왜 시도 때도 없이 곡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울음 소리가 아니다. 정녕 아니다. 해갈되지 못하는 사람의 갈망으로 들리는 소리마다 섣불리 운다고 우겨대지만, 들어보라. 저 기묘한 성대의 가락은 그들만의 작은 경전인지도 모르겠다. 은사 받은 방언의 기도 소리 인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신성한 의무 아래 사심 없이 외쳐야 하는 구호소리 인지도 모르겠다. 미세한 목숨을 연명하는 애절한 수단인지도 모르겠다.


신비한 자연의 퍼즐을 맞추어가는 고유한 천직이리라. 꿈의 재료를 익히는 뜨거운 연단이리라. 파리변물같은 축생의 자아일망정 한뼘 하늘 아래 그들만의 지상을 분별해 나가는 신성한 고행이리라.

                                                                                                                                     200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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