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
2008.08.12 11:58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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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同居)


                                                                         이 월란




사는 것이 그렇듯 우린 습성에 취해가고 있었다


꽃잎이 시들해질 때면 다시 물을 갈고 꽃을 꽂아 두는
정물화 속의 화병처럼 서로에게 몸을 꽂아 보고
매일 타인의 순결한 몸으로 다시 만나
우리가 가는 이 길이 둘이 아니라 하나였음으로
정처없는 흐름의 기착지는 언제나 서로의 가슴이었음으로
버릇처럼 살가운 축제를 벌인다

  
잡다히 사는 일에 한번씩 목이 꺾여도
빈혈 내린 육신 가득 서로의 체액으로 수혈을 받고
권태로움에 실종된 안부를 물어 뜨거운 입술로 안녕을 새겨 두고
부메랑처럼 서로의 가슴으로 돌아와 목쉰 얼굴을 파묻어야 한다

  
공생은 여전히 아름답다
황혼의 둑길로 설법처럼 이어진 길을 한 줄씩 번갈아 교독하며
나의 절망과 너의 희망을 섞어
얼어붙지도, 끓어 넘치지도 않는 잔잔한 묵언의 호수가 채워짐에


삶의 절벽마다 번지점프를 꿈꾸어도
나를 꼭 붙들어 맨 로프의 끝은 늘 너의 두 손이었음에
서로의 통점을 짚어가며, 피해가며
생의 민감대를 기억해 서로에게 새겨놓은 너와 나는  


초저녁별 아득해도
서로의 빛이 되려 발가벗은 어둠으로 눈감을 수 있는
너와 나는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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