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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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9.09 14:34

스시맨

조회 수 345 추천 수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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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월란




도시엔 출혈이 정지되었다. 날카로운 지성파들이 끼니 때마다 몰려와 회전판을 돌리면 육탈이 시작된 시신 앞에서 사시미의 저린 칼춤을 관람한다. 나의 꿈을 잉태해 줄 것만 같았던 물고기같은 여자를 안은 적이 있는데 그 때만큼은 헤엄쳐 본 적이 없는 나도 오래 오래 숨을 가두어 둘 수가 있었다. 싱싱한 나이의 육질은 다분히 본능적이지만 꿈의 번식은 결코 본능적이지 못했다. 지느러미 같은 접시 위에 하늘하늘 포개어지는 꿈의 삭정이들, 무지개빛 비늘이 기억을 포개어 심줄마저 타다닥 손을 털고 있다. 목숨 건 회귀의 본능을 포획당했고 수초밭의 소로를 헤엄치던 유년의 해저를 길어 올렸다. 은빛 뱃가죽이 늘어진 담청색 다금바리는 이제 꿈의 담장을 넘어 내세를 가른다. 아감딱지의 톱날에 베인 손가락에 대신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무흠한 바다를 건져올린 속죄의 제물에 살손 붙여 매일 각을 떠도 등푸른 고요는 접목되지 않아. 삼켜도 삼켜지지 않아. 부위별 고통의 맛은 조금씩 달라서 매일 다른 색으로 태어나는 혀를 자극하고 뭍에서 섬세히 해부되는 바다의 꿈을, 망양의 닻을 내린 도마 위에서 푸닥거리에 어지러이 신(神) 내린 박수무당이 되었다. 물결문신에 남아 있는 비린 슬픔에 무디어질 때마다 다시 날을 세운 손에 실핏줄 투두둑, 횟돌같은 살점마다 되박힌다. 뒤집어도 낯이 설다. 박제된 혈흔 한 점 찍어내지 못하는 투박한 두 손. 생선 뱃속으로 해가 진다. 전신이 지혈된 투명한 살점 위로 하루치의 노을을 뜬다. 삼킨 육두문자 벌겋게 피를 쏟는데.

                                                                                                                200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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