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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2시집
2008.09.16 13:14

까막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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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잡기



                                                                                                                  이 월란




1
해뜨면 우리 숨박질을 시작했지. 쨍쨍 눈부신 골목을 단숨에 부숴버리고 어미 사타구니 같던 헛간 볏짚 속 따뜻이 몸을 숨기면 온 세상을 기만한 공모자가 되어, 서로의 눈부처가 되어, 발각되지 않고 유유히 걸어나올 완전범죄를 눈 앞에 그리며 너와 나의 발등 가득 숨수  아낀 심장이 두근두근 녹아 내렸지.


2
발가벗은 수치에 눈뜬 아담과 이브도 손바닥만한 갈잎으로 하늘을 가렸대지. 허락받지 못한 은폐자의 혈청이 비손강을 타고 범람했대지. 침식력을 회복한 노년기의 하천이 하저를 갉아먹고 유년의 땅을 넘보듯이. 육탈이 시작된 시신 앞에서도 우린 허기져 간사한 눈앞에 비포장된 하룻길 들통이 나고, 빤히 명징한 날들 먼지 풀풀 날리며 번번이 사라져도 숨고 싶었지. 찾고 싶었지.


3
비밀의 덫에 걸린 두 눈은 회춘을 맞은 노옹의 그것처럼 갑자기 활기 넘치고 우린 시시각각 판단의 노예가 되어 어느 한 순간도 판단치 않곤 머리칼 한오라기도 간수하지 못했지. 천성의 수치로 오히려 목이 곧은 두 발 짐승이 되어 뻣뻣해지는 모가지에 어느 날엔 외로움의 잎이 무성했고 어느 날엔 오만의 탱목으로 불끈 솟아 올랐지.


4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용마루 너머 무엇이 숨었다 보였다 하는 일 하루 이틀 아니었어. 온통 숨기고 싶은 것들 투성이였지. 온통 찾고 싶은 것들 투성이었지. 엄만 또 쌈짓돈을 찬장 구석에 쑤셔박고 있네. 우린 절대 들키지 않아. 망하지 않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소맷자락 보일라. 저 떳떳한 햇살을 동강내어 가슴마다 요동쳐 보아도 술렁술렁 오늘은 내가 술래 오마조마 내일은 네가 술래.

                                                                                                               2008-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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