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by 이월란 posted Oct 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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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이월란



암실 속에서 인화된 사람들이 평면 에스컬레이터 위에 실리고 있다.
혈관처럼 이어진 화살표를 따라 환영인파같은 무리가 끝도 없이 마주쳐
오지만 그들은 결코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표백된 얼룩같은 통점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낙오자는 없다. 뱀길같은 미로는 마그넷
처럼 몽환의 눈빛들을 친절히 유인한다.


가끔 이탈자가 있나 싶어 두리번거려 보지만 평균속도를 넘어서버린
인파는 물똥 한점 흘리지 않는다. 꿈은 늘 꿈이어야만 하기에 유리칸
막이를 꼼꼼이 세워 두었다. 철통같은 방비는 어느 누구의 꿈도 통과
시키지 않을 것이며 지난밤 어둠에 절은 방종을 포식한 우리들은 늘
허기져 달려오는 육식동물과 유리칸 사이의 좁은 틈을 쉽게 포착할
수 없다.


은밀히 저장되어 있는 그들만의 환승티켓은 수수억년의 형질로 이어
받은 유전자의 비밀이며 그 세밀한 질주 앞에 소음이 된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이탈을 꿈꾸던 레일은 정기적인 보수공사로 매일 더 빛이
나고 문명의 토굴엔 어둠조차 삭제당했다. 수공의 빛은 동공의 크기에
족쇄를 채웠고 최하단위의 지폐 한 장으로도 축지가 가능한 우리들은
향기롭게 향기롭게 은폐되고 있다.

  
부교감 신경의 오류로 출구의 번호를 뒤섞어버리고 횡설수설 심장이
뛰는 공황장애자는 일찌감치 축출 당했다. 첨단엔진으로 업그레이드 되
어 사람을 물어나르는 저 육식동물의 동체는 성전환 수술 직전의 사람
들을 가끔 삼키기도 한다는데, 부르튼 관절을 세운 미지인들은 환한 지
하세계에서 자꾸만 눈이 마른다. 전위예술의 퍼포먼스는 이제 막 막이
올랐다.

                                                                       200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