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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10.20 14:33

밤꽃 파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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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파는 소녀



                                                                                       이월란




"내일은 경찰서에 간다이”
예수쟁이들 내일은 교회 간다는 말만큼이나 일상적이다
홀로 저무는 목숨을 담보로 또 거액의 쌈짓돈 쥐어주고 나오겠다
지게막대에 의지한 그녀의 사개 벌어진 지게같은 몸도
어둠 밝힌 세월 한덩이씩 실어 날라왔단다
각시 때 떠나버린 남편의 손찌검에 콧대 중간에 살짝 튀어나온 뼈가
어이그 어이그 자지러지며 드러눕는 그녀의 신음 발린 몸을
지탱해 온 고집보처럼 단단히 굳어 반짝인다
그녀는 평생 밤길에 익숙해져 있다
단칸방에 신방처럼 비단이불을 깔아 놓고 어두워지면 거리로 나가는 그녀
그녀의 포충망에 걸린 나비들을 눕히고 꽃을 꺾어다 주는 대가가
밑천 한 푼 없이 이제껏 버텨온 그녀의 든든한 소업이었다
그렇게 올빼미처럼 찬겨울과 찌는 여름의 어둠을 사른 돈이
은행에 고이 간직되어 다달이 타먹는 이자가 근근이 밥줄이 되었다
자식 줄줄이 유학 보낸 조카딸년에게 적지 않은 목돈을 떼인 적이 있어
외로움에 절어 사는 그녀는 이제 어느 누구의 친절에도 귀를 막았다
빗자루 몽댕이보다 못한, 늙어빠진 그녀를 따뜻이 감싸주는 건
한푼 쥐어 주면 언제라도 돌변해 버리는 피붙이들의 친절이 아니라
꼬박꼬박 변치 않고 들어오는 은행의 지폐다발이란 사실이 이젠 서럽지 않다
어젠 어정어정 어둠을 몰고 오는 사내에게
“러시아 꽃 한송이 맡아 볼래요?”라고 떠보았더니 재수 없게 형사더란다
눈가리고 아옹아옹 정기적으로 한번씩 수금을 다니는 형사나으리들
머리가 훤히 벗겨진 형사의 어깨너머로
하루같이 지새워 이젠 영영 해뜨지 못할 것 같은 여든 해의 밤이
가막소의 푸른 창살을 하나하나 부여잡고 있다
설레발레 또 집으로 돌아가면 몰핀 섞인 진통제를 삼키고
낯선 밤꽃 냄새 맡으며, 햇빛 가린 커튼 아래 버릇처럼 잠이 들 것이다
그녀는 꿈 속에서도 세파에 가늘어진 다리 세 개 간들간들 중심 잡으며
치렁치렁 머리 풀고 울고 있는 꽃들의 머리를 얹어 주러 갈까
그녀는 꿈 속에서도 나비 채집에 나설까, 날갯독에 눈이 멀 때까지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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