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월란 (2008-10-24)
발바닥이 새까맣다
어느 별밤을 몇날 며칠 쏘다녔는지
몽환의 갱도를 맨발로 통과한 노숙의 발
문명의 정글을 헤쳐 나온 원시의 발
욕념의 강물을 건너온 아디다스 잠바가 검푸른 강물빛이다
꿈마저 적선해버린 정복자의 두 발이
새장 속에 누워 철퍼덕, 날개를 접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교보문고로 통하는 동굴 속
개찰구로 들어가기 전 약속의 금 사이
낮은 반달모양의 목조무대 위에는 오래전 막을 내린
짧은 연극의 마지막 장면이 멈춰 서 있다
교보에서 훔쳐온 활자들이 잠든 사내의 체절마다 서걱거린다
큰대자로 누워 타인의 고뇌를 출력해낸 저 한 장의 흑백사진
땟국으로 새긴 문신마다 행렷빛 절망이 꽃처럼 피는데
신발도 보따리도 몸도 없이 그림자만 누워있다
나의 무덤 속을 엿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전생 같은 이곳은 날개 잃은 것들의 서식지였다
(군중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몰래 만진 혈류병의 여인처럼
사내의 그림자를 몰래 조금 잘라내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잠수공같은 몸에서
오래 전 날려 보낸 물새들은 이제야 산란기를 맞고 있었다
탕진할 목숨이 더 남아 있는가
생을 화냥해 버린 지하의 논다니
삶은 마주하면 뜨겁고 돌아서면 시린 것
화식인 같은 관객들이 지하철 입구로 사라지면
유령선 같은 땅속 기차는 배가 불러오고
찬 겨울이 오기 전에 계절이 날아가고
사내도 이제 잠에서 깨어나면
반투명한 저 우주의 침실을 깨고 날아가겠다, 훠얼
훠얼 날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