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375
어제:
183
전체:
5,021,359

이달의 작가
2008.11.04 13:17

감원 바이러스

조회 수 243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감원 바이러스



                                                                                      이월란



전갈의 독소를 닮은 그 세균은 사실, 매일 퍼지고 있었다
허리 휘어진 가지 위에서
줄도산 하는 이 가을, 병목들 사이에서


어쩌면 속눈썹 보다도 가벼운
어쩌면 며칠 야근을 한 눈꺼풀 보다도 무거운 목숨은
피지도 지지도 않는 저 온실 속 조화처럼 미끈한
플라스틱 꽃대궁을 닮은 것이 아니었다
생의 음모를 파헤치는 빛의 수령들 앞에 머릴 조아리고 또 조아려
비틀린 야생의 줄기처럼 까실한 침엽을 닮아가는 거였다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비밀 하나 있었다면
그녀는 바로 지금, 그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비밀 속에 머릴 풀어헤치고 자폭하게 될지언정


그녀는 450일, 열손가락보다 더 절친했던 연장들을 내팽개치고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파도를 삼킨 검푸른 리워야단*은 애완견의 눈빛으로
우리들 곁에서 사육당하고 있다
추격전은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금 밟으면 쫓겨나는 열전의 유막
그녀가 열고 나간 뒷문 발치엔 그녀의 모가지까지 차오르는 푸른 강이
흐르고 있을 터였고 방수복은 올이 풀리기 시작했다
물 속엔 식용가능한 산소가 자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린 잊고 산다


사실 난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아니, 너무나 잘 알고도 있다
다가올 추수감사절 식탁 앞에선 글썽렌즈를 낀 눈으로도
싸구려 햄 위에 그레이비를 얹듯 감사기도를 얹어서 먹으리란 사실을


출근시간마다 뇌성마비의 아침으로도 온전한 하루를 연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연료가 떨어진 자동차처럼 죽치고 앉아 있어도 주차위반 딱지가 붙지 않는
질탕하게도 선한 자유를 보듬어 안아도 봐야 할 것이란 사실을


장조에서 단조로 변주되는 시점
NG를 내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삼류배우가 되었다
감염된 전신의 참회를 저지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면역이 된 뒷문은 바같으로 향한 손잡이가 없는 여닫이 문이었다)
                                                      

                                                                               2008-11-04




* 리워야단 :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에 맞섰다가 정복당한 세력들의 상징적인 화신으로
성경에선 태초의 바다와 함께 머리가 여럿인 바다괴물(용)로 생각되었다.


?

  1. 낙엽을 읽다

    Date2008.11.01 Category By이월란 Views244
    Read More
  2. 언약

    Date2008.05.10 Category By이월란 Views244
    Read More
  3. 밤의 정가(情歌)

    Date2008.05.10 Category By이월란 Views244
    Read More
  4. Korean Dialects

    Date2014.05.28 Category영문 수필 By이월란 Views243
    Read More
  5. 젊은 영감

    Date2012.04.10 Category By이월란 Views243
    Read More
  6. 감원 바이러스

    Date2008.11.04 Category By이월란 Views243
    Read More
  7. 1시간 50분

    Date2008.09.08 Category By이월란 Views243
    Read More
  8. 도망자

    Date2008.05.10 Category제2시집 By이월란 Views243
    Read More
  9. 어떤 사랑

    Date2008.05.10 Category By이월란 Views243
    Read More
  10. 귀성

    Date2014.10.22 Category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1. 통곡의 벽

    Date2014.06.14 Category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2. The Giver

    Date2012.04.10 Category영문 수필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3. 詩3

    Date2008.11.25 Category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4. 전. 당. 포.

    Date2008.11.17 Category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5. 포효

    Date2008.06.13 Category제2시집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6. 핏줄

    Date2008.06.10 Category By이월란 Views242
    Read More
  17. The Background of the Nazis’ Racial Ideology

    Date2013.05.24 Category영문 수필 By이월란 Views241
    Read More
  18. 그림

    Date2012.04.10 Category By이월란 Views241
    Read More
  19. 출근길

    Date2009.04.05 Category By이월란 Views241
    Read More
  20. 개작(改作)

    Date2009.03.21 Category By이월란 Views24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