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집 4

by 이월란 posted Nov 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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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집 4



                                                                      이월란



-우리 막내딸 결혼식 비디오가 누구네 있나, 부치라고 해
-부쳤데요
-오늘 아침엔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의사를 봐야겠어
-같이 가입시더
-계란 프라이를 하나 먹고 갔으면 싶은데
-그라지예
-택시! (타자마자 버릇처럼 기본요금 600원을 동전지갑에서 꺼내시고,
차가 병원에 채 닿기도 전에 100원짜리 동전 6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버지의 고개와 함께.)


초등학교 6학년, 걸스카웃 행사로 아버지들이 오시는 날
우리 아버진 안오시는데 시간은 혼자서도 잘도 갔지
우리 아버진 안오시는데 다른 아이들의 아버진 잘도 오셨지, 모두
아버진 시계가 없으실까
포크댄스는 시작 되었네, 쟤는 아버지가 없나봐
노란 하늘도 뱅글뱅글 포크댄스를 추는데
헐레벌떡 달려오신 담임선생님 앞에서 난 결코 울지 않을래
포크댄스는 끝나가고 눈을 떼지 못한 교문 앞에서
구부정한 허리로 택시에서 내리시던 아버지


아버지, 댄스는 끝났어요
제발 그 택시를 도로 타고 돌아가세요


지구 반대편
성탄절 장식에 불바다가 된 몰몬탬플에서 스페니쉬 동서와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정말 그 택시를 도로 타시곤 멀리, 아주 멀리 가버리신 아버지
한번도 나와 포크댄스를 추시지 않으셨던 아버지
어릴 땐 그 분의 신문과 무릎 사이에 가두어진 나의 양볼을 따끔따끔 찔러대시던
그 턱수염만큼 수많은 까칠한 기억을, 내 몸에 난 땀구멍만큼 남겨두시고
달과 6펜스*처럼 동전 6개를 남기시고 달을 따러가신 나의 아버지

                                                                2008-11-11



* 달과 6펜스 : 서머셋 모옴(Maugham, William Somerset)의 소설 제목